봄 여름 가을 겨울70 서울, 지하철을 기다리고 타면서 든 생각들. 열일곱살 때부터 학교, 직장 등의 이유로 이곳저곳 터전을 옮겨 살았기에 딱히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 정이 별로 없다. 정을 많이 주었던,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이곳에 있지 않기에. 그래서 주말이 되면 종종 버스에, 기차에 몸을 싣는다. 이번 주말에 향한 곳은 서울. 버스로 4시간 거리. 어렸을 적부터 명절이면, 멀리 떨어진 할머니집에 가기 위해 6~7시간은 기본으로 차안에서 버텨야 했었기에 , (네비도 없었던 그 시절, 운전대를 잡은 아빠, 새삼 존경스럽다.) 인천에서 대학교에 다닐때도 집에 가려면 4시간은 기본이었기에, 특히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그 순간들을 좋아하기에 장거리 버스나 기차를 타는 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되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소중한 사람을 보러가는.. 2019. 2. 25. 크리스마스, 2018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인 크리스마스. 2018년의 이번 크리스마스는 참 활기찼다. 우리나라와는 여러가지로 참 많이 다른 서구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종일 함께했던 길고도 짧았던 하루. 전부터 알고지낸 친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새로운 '친구의 친구'들도 다함께 모였다. 동성애자도, 결혼한 부부도, 남편 두고 혼자 모임에 온 중년의 여자도. 나이대도 참 다양했다. 어찌보면 크리스마스 모임이라고 보기엔 연관성이 하나 없는 사람들. . . 사실 어색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니, 사실 이야기를 해보기도 전에 느껴지는 그 사람의 시선이 있다. 참 불편한.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런 모임 자리는 초대를 받아도 가지 않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무.. 2018. 12. 27. 말의 온기 열 전달의 정도는 물리적 거리에 비례하듯이, 아무리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컵이라도 손에 닿아야만 비로소 그 따뜻함이 느껴지듯이, 그리 신경쓰지 않는, 먼 사람의 말은 무슨 내용이 담겨 있든 사실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은 그 온기가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마지못해, 의무감에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 그 사람이 내뱉은 말은 가끔은 너무나 차가워 몸서리가 쳐지며 가끔은 너무도 미지근해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2018. 12. 24. 어떤 사람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튀기거나 느끼한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평상시엔 있어도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은ㅡ 그런 것들이 땡길 때가 있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달콤한 것만 느끼한 것만 생각이 나고 찾게 된다. . . 평상시의 내가 아닌, 가끔의 나는 좋아하는 것도, 하고싶은 것도 분명하게 다르다. 신기할 정도로. 그게 참 이상하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인가? . 어떤 사람. 내가 나를, 나에게 정의하고 소개할 때 , 난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주욱 나열해 본다. 난 ㅇㅇ하는 걸 좋아하고 ㅇㅇ같은 사람을 싫어해. 그런데 가끔은 이중 상당수가 바뀌어버릴 때가 있다는 것.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이런데. 누군가를 내 맘대로 정의하는 건 , 판단하는 건, 얼마나 무의.. 2018. 12. 11. 훈자가 아닌 훈자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며 아이에게도 관심이 없는 체념에 가까운 무심한 남편. 이로 인해 혼자서 떠맡아야 하는 고된 직장생활과 자신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독박 육아의 병행으로, 육체적/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아내. 아내는 우연히 머나먼 타국의 오지, '훈자'라는 곳을 알게되고 이후 끊임없이 그곳을 떠올리고 갈망하게 된다. 훈자는 그런 그녀에게, 상상 속 안식처. . . ' 오랜 시간 계속되어온 습관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훈자를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여자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훈자가 아닌 훈자였다. 훈자가 아닌 훈자를 생각하는 일은 훈자인 훈자를 생각하는 일보다 힘이 들거나 거의 불가능했다.' - 한강, 노랑무늬 영원 그런데 여자가 알고있던 '훈자'는 더 이상 예전.. 2018. 12. 3. 신경쓰지 않는 것 '신경쓰다'의 사전적 의미. 사소한 일에까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해야 하기에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다. 그런데 신경쓰는 것 보다 신경쓰지 않는 게 훨씬 어려울 때가 있다. 제발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으면, 그만 좀 떠올랐으면 . 생각을 하면 할수록 생각이 나서 괴로워진다. 2018. 11. 30. 하늘은 무슨 색이었던가 아침. 여느때처럼 일어나 방에서 나와 기지개를 켜며 거실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아침부터 숨이 턱 막혔다. 미세먼지와 안개의 콜라보레이션. 파란 하늘은 커녕, 가까이 위치한 이웃집도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고 무서웠다. 이런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 하늘은 무슨 색이었던가? . .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 흰 도화지에 칠하기 가장 좋아했던, 크레파스의 하늘색 -은 머지않아 곧 회색이 되지 않을까 . 춥고 어둡고 매캐하고 축축하다. 영화 annhilation이 생각났다. 모든 생명체들을 변이시켜버리는 쉬머. 이불 밖이, 정말 위험해지고 있다. 2018. 11. 27. 고마운 하루 새벽 5시 반. 아직 하늘에 별이 총총한 시간에 집을 나서, 당진에 도착하니 9시. 점심먹곤 곧바로 대전행.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던 정신없던 하루. 집에 돌아오니 또 하늘에 별이 총총한 시간이다. 겨울이 다가오니 밤이 길어지기도 했지만 차 안에서 날이 밝아오고 날이 어두워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침 일찍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니, 그래봤자 똑같이 24시간인 하루가 엄청 길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이는 저녁 노을은 집을 나서는 길 보이는 아침 노을과는 또다른 느낌.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갔구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ㅡ 얼른 씻고 누워있고싶다- 이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토록 바랐던 따뜻한 우리집 이불 속. 지금 돌이켜보니 이 모든 게 참 감사하다. 이렇게 바쁜 하루.. 2018. 11. 20.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