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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행/한국

전라도 광주, 5.18기념문화센터 견학: 5.18이 폭동이라고?

by Boribori:3 2017. 12. 16.

오랜만에 광주를 찾았다.

고등학생때만 해도, 학교와 가까워서 자주 가곤 했었던 곳인데.

 

매번 친구들과 함께갔던 곳을, 이번엔 남자친구와 함께했다.

 

 

데이트코스로, 우리가 방문했던 곳 .

5.18기념문화센터.

 

 

 

나는 전라도사람이라 중고등학교때 견학이나 현장학습으로 광주의 5.18기념관련 장소들을 몇번 가보곤 했었는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남자친구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이번 기회에 꼭 같이 가보고 싶었었다.

 

광주에는 518번호의 버스도 다니고, 곳곳에 5.18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장소들이 많다.

 

우린 그 중에, 5.18기념문화센터에 갔다.

 

 

 

 

이번에 우린 택시를 이용했지만 -

광주 번화가 중 하나인, 상무지구 쪽에 있어 버스편도 꽤 많다.

 

5.18기념문화센터는 5.18기념공원 내에 있는데,

기념공원도 둘러보려 했지만 우산도 없느데 비가 추적추적오고, 날도 추워서- 패쓰.

 

비는 광주에 있던 내내 오지 않다가, 정말 이 곳에 딱 도착하니 내리기 시작했다.

 

 

 

흐린 날씨가 동상을 더 부각시키는듯 하다.

 

 

 

 

 

 

동상 뒤에는 관모양의 입구가 있다.

(관을 본딴모형인지는 몰랐으나.. 그렇다고 한다. 5.18민주화항쟁때)

 

여기 안으로 들어가면 5.18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나온다.

 

 

 

죽은 자식을 품에 안고있는 어머니 동상.

 

내가 당시, 광주에 살았었더라면, 밖으로 나가 불의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었을까?

상대가 총과 칼을 든 무장한 군인이었다면.

 

 

 

동상 뒤의 검은 벽엔, 5.18에 참여한 사상자들의 명단.

너무 많아서 놀랐다.

나와 남자친구는 여기 있는 이름이 몇개정도 되는지, 궁금하여 세어보았다..

대략 4천여개정도.

신원미상인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이 곳에 새겨진 이름들을 훨씬 초과할 것이다.

 

이름 밑에는 생년월일이 표시되어 있는데/

거의 1950~1960년대 사람들이었다.

5.18운동이 1980년대 일어났으니까, 10대에서 30대 젊은이들이 대다수였다는 것.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국민을 짓밟는다는게.

 

 

 

.

.

비올줄도 모르고 우산도 없이 가서 당황한 우린,

근처의 기념문화센터로 곧장 뛰어갔다.

 

일요일, 주말이었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거의 가족 단위로, 어린 아이들 동반.

 

이런 것이 참교육이 아닌가 싶다.

나도 자식이 생긴다면, 다른 건 둘째쳐도 올바른 역사에 대해 꼭 - 가르치고 싶다.

 

 

 

 

기념문화센터 내에 전시되어있는 5.18민주화항쟁 당시, 생생한 현장사진들.

지금도 - 이게나라냐, 싶은 대한민국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행동으로 번졌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참여'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다시한번 강하게 느꼈다.

국정을 농단했던 박근혜, 최순실 등이 결국엔 줄줄이 감방에 가는 걸 보면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숨어만 있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고.

 

 

1980년, 광주 시민들.

정말 고맙고 미안하고 자랑스럽습니다.

 

 

2017년 들어 가장 감명깊고 재밌게 봤던 영화, 택시운전사-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독일출신 기자.

실존인물이었다.

 

 

기레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그런지,

진실규명을 위해 목숨 걸고 취재하고, 세상에- 은폐되고 있던 전두환정부의 행각을 널리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더더욱 멋있고 고맙게 느껴졌다. 정말 참된 언론인이셨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그때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기 급급했었는데. 부끄럽다 참.

 

 

 

 

 

 

 

 

 

 

지하1층에 마련된 전시실엔 5.18관련 책자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번 주말엔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들을 빌려봐야겠다는 욕구가 생겼다.

 

 

책을 보던 중, 마음에 와닿은 시.

 

 

 

 

 

 

 

 

 1980년. 그래봤자 40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5.18광주민주화 항쟁은 한때, 적폐 언론에 의해 '폭동'으로 매도되었었는데, 아직까지 이를 잘못 알고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폭동- 아니고, 민주화항쟁이다.

군인이, 전쟁 중에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살인죄를 묻지 않는 것처럼. 5.18때 광주시민들이- 무자비하게 자신들을 때리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며- 잔인하게 진압하는 계엄군들에 저항한 것을 폭동이라 한 건, 옳지 못하다.



5.18계엄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싸울 능력이 있는 건장한 남성시민들 뿐만이 아니었다.

노인. 임산부. 학생. 어린이 등 다수의 노약자들도, 그들은 가리지 않았다. 5.18 희생자 중 다수는 10대,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시민 항쟁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좋은 성능을 가진 무기로 무장한 군인이, 시민 몇이 총을 들었다는 이유로- 단체로 우르르 광주로 몰려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차별 진압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싶다. 그리고 광주로 가는 길목들은 왜 차단했는지? 왜 기자들이 취재도 못하게했는지? 정말 폭동이었다면, 이 폭도들이 이렇게 행동을 하기에 우리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정당방위 중이다~하고 알리고 싶어서라도 취재를 오게 했을텐데 말이다. 정말 폭동이었다면, 진상규명은 왜 이리 안하려했는지?

 

 


5.18광주민주화운동.

폭동이 아니라, 독재자와 맞서싸운 민주화항쟁이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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