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의 독재시대,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되었다고 추정되는 유대인 수만 약 600만명.
몇천도, 몇만도 아니고 수백만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인간의 탈을 쓰고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는지, 그런데 이 도저히 믿기 힘든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히틀러를 제외하고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관련하여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 중 한명이 아이히만이다.
이 책은 저자 한나 아렌트가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홀로코스트 주역 중 한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상대로 이루어진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그의 행동에 대해 내린 해석을 담았다.
저자인 그녀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사실을 왜곡, 과장하지 않고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히만 재판이 있었던 1960년대 당시는 유대인의 집단적 분노가 과열된 상태였고, 그녀 자신도 유대인이었기에 객관적으로 재판을 바라보기가 무척 어려웠을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끔찍한 전범자 아이히만을 변호했다며 수많은 유대인들의 맹비난을 받았다는데, 직접 읽으며 든 생각은, 그녀는 그저- 객관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그를 분석했을 뿐이라는 것. (옹호보단 비판에 더 가깝다)
한국어 번역본과 원서(영어) 두권 모두 읽어봤는데 둘다 어렵다..
길고 꼬인 문장들이 많아서 내용 자체를 읽어들이는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한국어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조잡하고 애매한 문장들이 꽤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길고 꼬인 문장들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0.14~1975.12.4)
이 책의 저자인 한나 아렌트는 독일 유대인 가정 출신의 정치이론가이자 철학자로
1932년까진 독일에 살았는데 반유대주의에 대해 연구하다, 반정부 사상을 선전한다며 게슈타포*에 의해 잡혀가 8일간 구금되어있다 풀려났다.
(*게슈타포: 1933년 설립된 독일 나치스 정권하의 국가권력기구.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유대인, 지식인, 노동운동가 등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들을 감시하고 탄압하며 나치스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활약했다. 유럽 전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에 집결시켜 몰살시키는 임무를 수행한 이들도 게슈타포.)
이후 그녀는 히틀러의 독재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반나치 운동에 참여하다가(1933~1940)
1940년 5월,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독일에서 온 피난민들(대부분 유대인)과 함께 수용소에 갇히게 되지만 운좋게 미국 저널리스트 Varian Fry 등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위조하여 미국으로 피난가는데 성공한다.
안전한 미국에서 그녀는 학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어,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등을 여러 책을 내며 유명해진다.
그러다 1960년.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 대학살에 가담했던- 가장 악명높은 사람 중 한명이었으나 해외로 튀어 숨어 지내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정보부에 결국 붙잡혀 압송된다. 그는 결국 예루살렘에서 그가 저질렀던 일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은 국제적인 관심 속에 7개월여간 열렸다.
이때 한나는 잡지 '뉴요커'의 요청을 받아 특별취재원 자격으로 아이히만의 전 재판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출판된 책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체주의에 길들여져 판단력이 마비돼 생각할 능력이 없는' '평범한' 관료이며, 관료주의적 타성에 젖은 '거대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에 불과해 보였다는 게 아이히만에 대한 한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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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이 책의 제목이자 소위 '주인공'인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실존인물이 어떠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저질렀다는 홀로코스트는 언제 어디서 일어난 것인지 등 배경을 이해하고 읽는 게 좀더 빠른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된다.
나도 책을 읽다가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사건들에 대해, 뉴스, 다큐멘터리, 관련 영화 등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며 잘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뉘른베르크법(Nürnberger Gesetze)>
1935년 9월 15일, 나치 독일의 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발표된 반유대주의 법으로,
유대인 학살의 최초 법적 근거가 되었다. 주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독일 내 유대인의 독일 국적 박탈
-유대인과 독일인의 성관계 및 결혼 금지
-유대인의 공무 담임권*박탈
(*공무담임권: 각종 선거에 입후보하여 당선될 수 있는 피선거권과 공직에 임명될 수 있는 공직취임권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국민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관의 구성원이 되어 공무를 담당할 수 있는 권리로 국민의 기본권.)
<게토(ghetto)>
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된 유대인 거주지역.
제1회 십자군 원정(1096)후, 그리스도 교회는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 교도와의 교제를 금지하였다.
유대인들은 특정한 구역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 주위는 벽으로 둘러싸여 해가 지는 동시에 문이 닫혀졌으며 외출할 떄엔 특정한 모자 또는 두건을 쓰는 등 심한 차별을 받아야 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중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유대인,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100만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인종청소'라는 명목 하에 학살한 사건. 사망자 중 약 6백만명은 유대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이후, 많은 수용소가 유대인이나 전쟁포로들이 처형당하거나 강제노역 하는 곳으로 변했고 1942년, 나치 지배 하의 폴란드엔 대량학살만을 위한 목적의 집단 처형장(Vernichtungslager, 집단학살 수용소)들이 세워졌다.
(1942년, 아우슈비츠와 5개의 수용소들이 집단학살 수용소로 지정되어 유대인 학살계획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중 이전부터 노동 및 전쟁포로 수용소였던 곳도 있지만 베우제츠(Belzec), 소비버(Sobibor) 등의 수용소는 오로지! 유대인들을 어 많이, 더 빨리 '살처분'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당시 독일군은 유대인을 게토(Ghetto, 1940~1945)에 수용한 후 화물열차에 실어서 집단 학살 수용소로 이송시켰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아돌프 아이히만( Eichmann, 1906~1962)>
독일 나치의 친위대 중령이었던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을 강제 이주시키는 계획, 지휘한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실무자였다. 그는 한나 아렌트가 프랑스로 망명갈 즈음 나치당에 입당했고 하인리 힘러(Heinrich Himmler, 히틀러가 임명한 나치스의 친위대장이자 게스타포 장관으로 유대인 대학살의 주역) 아래 친위대에서 일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을 추방하여 게토에 가두고 강제수용소 및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시키는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2차세계대전에 결국 독일이 항복하자(1945)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15년간 가짜 이름(리카르도)으로 평범한 사람처럼 살며 조용하게 지내다, 1960년 5월. 이스라엘의 비밀 정보원들에 의해 체포당해 이스라엘로 끌려와서 재판을 받게된다.
1961년 12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책임을 느끼냐는 질문에 자신은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 상부에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고 무죄를 주장했으나 15개의 기소 항목에 모두 유죄 판결을 받고1962년 6월 1일, 결국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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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저는 무죄입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군인으로서 지시받은 업무를 열심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제가 고안해낸 열차(가스실이 설치된 열차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죽었다.) 덕분에 시간낭비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죠.
그런데 저는 단 한 사람도 제 손으론 죽이지 않았고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죽음을 방관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나요?'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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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재판과정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일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 전혀 악해보이지 않는 평범한 이웃집 남자같아서.
법정에 증인으로 나선 아우슈비츠 생존자 디무르는 아이히만을 보고 기겁하며 탄식했다.
'아이히만이 저렇게 평범한 사람이었다니. 저렇게 평범한 사람이 그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가스실로 집어넣다니.'
그를 진찰했던 정신과 의사들도 그를 정상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아이히만은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을 죽이면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같은 악마나 괴물같은 사람이 아닌. 나치 패망 후 피신한 아르헨티나에서 15년을 살았을 때 그를 알았던 사람들도 그는 성실하고 평범한 사람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7개월여간 예루살렘 재판장에서 본, 판단력 부족하고 생각이 없이 그저 충직했던 아이히만은 사실 그의 연기였을 수도 있다. 선량한 시민이자 공무원이었던 척 하는.
아렌트가 살아있었던 당시만 해도 공개되지 않았던,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에 기초한, ‘예루살렘 재판장 이전의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독일의 적으로 간주하며 유대인 학살을 지지했던 신념에 가득 찬 나치였다고 하는 연구들도 있기에. 그가 유대인 학살과 관계된 일들을 상부의 명령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그 신념에 따라 열정적으로 수행했다는.
그런데 아이히만이 그저 명령에 충실히 복종을 했을 뿐인지 아닌지의 사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나치 친위대에서 유대인 추방과 수송을 담당하던 책임자였던 건, 그가 가담하여 수백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건 명백한 팩트.
아돌프 히틀러라는 독재자 밑에서, 군인으로서 상부에서부터 내려진 명령과 나라의 법을 따랐던 아이히만.
그런 아이히만을,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성실하게 임하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 봐야 할까.
누구라도 그러한 상황이었더라면 상부에 충성적으로 명령을 수행하는데 임했을까.
'실제로 만나 본 아이히만은 살아 있는 악마는 아니었다. 오히려 칸트의 도덕률을 실천했노라고 자부하는 보통 사람이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한 사유 불능이나 사유 거부, 자발성의 총체적 결여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그를 극단적인 악의 대리자로 만들었다.’
'악이란 뿔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그러한 그가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생각의 무능이 죄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타고난 악랄한 사람만이 악을 행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현실과 타협하거나 굴복한다면.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하다면.
유대인 대학살은, 나치 지배 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들에 의해서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
1941년 6월 30일, 14,000여명의 유대인이 루마니아의 주민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했고
1941년 7월 10일,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폴란드 예드바브네에선 폴란드인들이 아이들을 포함한 최소 340여명의 유대인들을 헛간에 가두고 불을 질러 죽였다. (Jedwabne pogrom )
당시 유대인 이주와 인종청소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학살을 행한 이들은 국가의 명령을 받아들인 평범한 사람들.
아무 생각없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충성이며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가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즉 - 비판적 사고, 반항적 사고, 공감적 사고가 없는 '무사유'는 악이 되었다.
#언어가 가진 힘
나치는 국민들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켜 유대인을 더 빠르고 쉽게 제거하기 위해 '언어 장난'을 쳤다.
유대인의 '강제 이송'은 '재정착'으로, 유대인 대학살을 '유대인 문제의 최종적 해결'(영어:final solution to the Jewish question, 독일어: Endlosung der Judenfrage)이라고 완곡하게 미화하여 표현하였다.
언어가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매우 크다.
언어는 상대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존재하며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로 기능함이 목적이나 반대로 생각을 담아내고 굳히기도 한다. 내가 세상에서 겪는 모든 일들은 결국 언어를 통해 정신에 새겨진다. 다른 사람이나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것도 언어가 전달하고 전달된 언어를 사유하며 이는 나의 생각이 된다.
아이히만은 재판장에서 받은 수많은 질문들에 같은 단어를 통해 답했다. 최종 해결책. 재정착. 안락사.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구호는 , 생각을 뚫고 들어오는 계속 반복되는 단어들이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이는 곧 그 사람의 신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건 생각보다 너무 쉬울 것 같아서.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
그러나 반대로 누구나 아이히만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평범하다'는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일반적이다는 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힘있는 자, 혹은 다수가 옳다고 하는 걸 따르는 것이라면
그것 자체가 자신은 의도치 않은 '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분명 의도치 않았을 테지만 타인을 억압하고 때론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내 신념과 가치관을 단단히 하여,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사회가 아닌 내 자신이 정해-
그것을 넘으라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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