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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82년생 김지영: 우리 모두의 이야기

by Boribori:3 2019. 10. 30.

오늘로부터 딱 일주일 전- 수요일 밤, 영화를 무척 좋아하시는(웬만한 상영중인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꼭 보시고야 만다.) 아버지께서 아무런 상의없이 4인 가족의 표를 예매하시고는 영화관으로 소환하셨다.

제목은 '82년생 김지영'.

몇년 전 책으로 읽은 적 있어 내용은 알고 있었기에 책과 어떻게 다를지, 내용을 어떻게 살릴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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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여자 '김지영'과 그녀의 삶을 차지하고 있는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 김지영은 남편 대현과 함께 어린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

그녀의 삶은 사랑하는 남자 대현과 결혼해 아이를 낳은 후 급격하게 변화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했고,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도 아이를 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하루 온종일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퇴근한 남편의 밥상을 차려주고 또 아이를 돌본다.

고된 육아와 집안일을 하루종일 해내지만,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다시 일하고 싶지만 당장 자신만을 바라보며 우는 아이와 앞으로도 그러기 힘들 것이라는 현실 속에 좌절하며 지영은 점점- 마음 속 깊이 병들어간다.

(음. 영화가 원작인 책과 다른 점은 원작은 김지영씨의 생애 전반을 다루며 무겁고 비판적인 , 페미니즘적 색채가 강하다면 영화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지영에게 생긴 정신병과 그녀 주변의 사람들, 상황들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영화 속 남편 대현은 편협하지 않고 오히려 다정하고 자상한 인물. )

사실 지영의 이러한 마음의 병은 어린시절부터 자신도 모르게 당해왔던 차별들, 그녀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고 들으며 - 눈에 띄지만 않았지 오래 전부터 조금씩 커져왔던 것이었다.

지영의 엄마 미숙도 또다른 지영이다. 선생님이 되고싶다는 꿈을 접고 젊었을 적 공장에 취업해 남자형제들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왔다.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그런 시대에 태어난 미숙은 지영과 지영의 언니 두 딸을 낳았고 셋째는 '다행히도' 아들이었다. 그 막내아들은 어딜 가나 예쁨받고 사랑받고 그만큼 지영과 지영의 언니는 후순위로 밀렸다.

이상한 남학생이 쫓아와 엉엉 우는 어린시절 지영에게 아빠는 말한다.

치마가 짧다고.

나도 그런 말, 부모님께 참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런지 이런 부분은 공감이 많이 갔다.

치마가 짧다, 여자애가 그렇게 입고다니면 안 된다.  여자가 조신해야지. (물론 딸이 걱정되는 말에 하셨던 말씀이겠지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탓을 하는 게 그게 잘못인 줄 모르고 살았던 시대.

그리고 자기 아들 귀한 줄만 아는 시어머니의 이기적인 행동들은 지영의 마음을 더욱 병들게 만든다.

 

그래도 지영이 커가는 동안 여자들도 원하면 공부해서 대학도 가고 할 만큼 시대가 변했다.

아빠는 출근해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집에 남아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되었던 이미지도 많이 변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맞벌이 부부들은 부모님 세대에 비해 훨씬 늘었다. 남녀 할 것 없이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한다.

그러나 아직 보이지 않는 벽이 높다. 여성은 임신, 출산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육아휴직 제도를 눈치보지 않고 쓸 수 있는 회사라면 너무 좋겠지만 아직까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면 직장에 갈 수 없는데. 영화는 왜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영의 남편 대현은 사랑하는 아내를 이해해보려고, 도와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상한 사람으로 나온다.

(만약 대현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아내를 보며 '집에서 애만 보는 너가 뭐가 힘들다고 그래? 나도 힘들어'하고 투정하는 남편으로 나왔으면.. 정말 너무 화가났을 것 같다.)

그렇지만 한계가 많았다. 대현은 아내가 하고싶어하는 일을 하게 해주고 싶지만 현실이 이를 가로막는다. 

 

남자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9년 먼저 태어난 김지영 씨의 삶은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살아오며 직접 겪었던 상황도 있지만 엄마나 이모, 할머니, 동생 등 가족들이나 친구 등 내 주변 여자인 사람들을 보며 간접적으로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부장 끝판왕 남편과 살며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한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와. 힘들게 딸아이를 출산한 당일날에도 아들을 못 낳았다고 핀잔을 들어야했던, 딸 셋을 키워내야 했던 엄마가 생각나 그렇게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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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많은 비판을 받는지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논란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일 뿐인데.

아니. 이 영화는 결코 어느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폭력은 남성에겐 '남성스러움'을 강요하는 폭력으로 양성 모두에게 억압과 부담으로 돌아온다. 왜 우리나라는 남자만 군대를 가야할까? 왜 남자는 결혼하면 '가장'이 되어 어깨가 무거워져야 했을까?

82년생 김지영의 삶은 82년생 김영수의 삶을 만들수밖에 없었다.

남성, 여성으로 나뉘어 서로 간에 젠더 갈등을 일으키는 건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만드는 무의미하며 소모적인 일.

전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와서 인식조차 되지 못해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되면서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드디어 '인식'되어지고 있는데,

그동안 묵묵히 참았던 침묵을 깨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고백하며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점들을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하는 여성들을 조롱하는 일부 남성들. 피해망상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들.

왜 이렇게 공감능력이 부족한 걸까?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좋든 싫든 어떠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태어난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릴땐 부모나 보호자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

좀 더 자라서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학원, 직장 등을 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간다.

무인도에 가서 자급자족하며 살지 않는 이상 자의이든 타의이든 타인과의 관계유지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형, 오빠, 누나, 언니이며 이웃집 아저씨이며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이 될 수 있다. 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난 그렇다.

 

김지영이라는 사람이 살며 겪어왔던 아픔을 그렸을 뿐인데 .

한 사람의 아픔, 그의 곁을 지켜주는 가족의 아픔.  사람. 우리네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데.

남편 대현은 왜 권리인 육아휴직을 쓰는데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데! 왜 젠더갈등의 논란의 정점에 서있는 영화가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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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누가 누구를 때리고 억압하는 물리적 폭력, 상대에게 상처와 모욕을 주는 말을 하는 언어 폭력 등은 증거와 증인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상대를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통념과 제도가 만든 구조적인 폭력은 그렇지 않다.

그 폭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해도 '예민하지 않다면' 인식하기 힘들고 심지어 불법도 아니다.

수십년간, 수백년간 그렇게 행해져오고 있었기 때문에 .

그래서 더더욱 무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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