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봄 여름 가을 겨울

할아버지 장례식, 느낀 것들

by Boribori:3 2019. 12. 30.

스페인 여행 6일째.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자, 사랑하는 동생 인혜의 생일날.

유럽여행에 와서도 꼭 하루 한끼는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할 만큼 토종입맛을 자랑하는 그녀.

그런 그녀가 그날 가장 먹고 싶어하던 부대찌개와 제육볶음을 만들 재료를 사와 저녁을 먹고,

케잌과 와인을 꺼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내일의 여행계획을 이야기하며 너무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브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계시는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한국시간으론 25일 새벽 4~5시쯤 되었을 것이다.

워낙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는 아빠였기에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려고 하시나? 하고 받았는데,

할아버지가 많이 위독하시다고, 엄마- 동생들 몰래 돌아오는 비행기편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시고 끊으셨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한시간 후- 할아버진 이곳 세상을 떠나셨다.

우린 바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다음날 귀국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두달 전부터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들으니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사흘 전까지만 해도 미음을 떠먹여드렸었는데.

내겐 그 장면이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마지막 모습. 그 장면이 계속 그렇게 떠올랐다.

.

.

폭력적이었던 할아버지에게 아무 반항도 하지 않고 그가 하라는대로 그저 했던 할머니를 보면서, 아프셔서 앓아누우셨을 때까지 가부장적인 모습을, 할머니의 보살핌을 너무 당연시하는 할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었다.

그래도 남의 도움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 어찌보면 갓난아이와 같아진 할아버지를 보면선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동생들에겐 그리 좋은 기억이 많지 않은 할아버진 크리스마스날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

.

우리가 도착하고 3일동안 치뤄진 장례식.

영정사진과 사진 옆에 놓인 흰색의 국화들을 보니, 영안실에 놓여있는- 수의를 입고계신 할아버지 시신을 보니, 계속해서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맞으니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선 할아버지를 볼 수 없겠구나-.

그래도 죽음은 인간의 육신으로 있을때의 삶의 끝일 뿐-

그 이후의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기에 위로가 되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예정하고 있고 이 섭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을 소중히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이 소중한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는 지금.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날 수 있다 해도,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드니까.

 

죽음이 가르쳐주는 교훈.

사실 할아버지의 죽음보다, 마음이 아팠던 건 슬퍼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병상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매일매일 찾아뵈며 직접 대소변을 받아내시며 끝까지 효를 다했던 아빠.

장례식 사흘 내내 눈 한번 안 붙이시고 빈소를 지켰던 아빠.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챙기는 아빠를 보며 느낀 것.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와 너무 닮으셨다. 할아버지 영정사진은 회갑잔치 때 사진인데 지금 아빠도 나이 60을 바라보고 계신다. 나이 서른이 되어가니 많이 느껴지는 것.  늙어가는 부모님의 모습.

내 나이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 보는, 아빠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시는 모습.

 

가슴이 정말 미어졌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사랑한다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표현을 못 했던 게 가장 후회된다고.

이번에도 많은 걸 배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잘해줘야지, 더 사랑해야지.

오늘을, 오늘의 내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지.

비가 오고 추웠던 올해 끝자락 12월 말의, 할아버지 장례식.

자리를 함께해 준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그 온기를 가슴깊이 머금고 간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오랜시간 아빠와 가장 친한 벗으로 지냈다는- 사흘 내내 자리를 지키신 친구 분이 하신 말씀을 잊을 수 없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사랑해서, 말을 안 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기쁜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가장 기쁘고, 슬픈 일이 있으면 내 일인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이렇게 사랑하고 날 사랑해주는 친구가 한명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절대 알수가 없다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기 참새를 줍다: 먹이주기  (10) 2020.06.05
감사한 일들들들들들  (6) 2020.05.13
밤보단 낮  (1) 2019.11.27
엄마, 마마, 마더. 엄마라는 이름  (2) 2019.11.09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1) 2019.09.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