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산과 도보 2분거리에 있는 역세권과는 아주 반대되는 개념의. 산세권이다.
그래서 집까지 운전하고 오는 길엔 심심치 않게 철마다 산에 사는 동물들과 마주친다.
로드킬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올라오는 비탈길은 정말 조심조심 운전.
가장 많이 보이는 동물은 꿩, 고라니, 그리고 온갖 종의 쪼끄미 새들.
우리집은 지붕이 기와로 되어있는 한옥 전원주택이다.
기와집은 새들이 둥지를 만들기 좋은가보다.
날이 따뜻한 요즘은, 참새들의 번식기인지 우리집 지붕에 둥지가 최소 4개는 있는 것 같다.
퇴근하고 마당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어미새들이 열심히 벌레를 물어다 나른다. 기와 틈새 사이로.
어미새가 그 틈새 사이로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새끼새들이 시끄럽게 울어댄다.
지붕이 높아서 보이진 않지만
얼마나 자주 먹이를 나르는지 시계 보며 재보니 적어도 5분에 한번씩은 오는 것 같다.
벌레 사냥하는 모습도 몇번 봤는데 그저 신기.
특히 날벌레.. 높은 곳에 앉아 내려다보다 날아다니는 벌레를 발견하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낚아챈다.
하루에 600회 이상 먹이를 나른다니..
산에 있는 우리집 주변에 벌레가 별로 없는 것도 이 친구들 덕분인 것 같다.
동물의세계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보는 것 같은 요즘은 이 친구들 보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그러다 4일 전 일요일 오전.
할머니집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
새줍을 하였다.
살아있는 새줍은 처음이었다.
(이번주에만 마당에서 죽은채로 발견된 새끼새들을 3번이나 목격하였다.
우리 집 앞마당엔 세마리의 개들이 사는데 내 눈에 발견되기 전에 멍멍이들이 먼저 발견하면.......
탄이는 닭, 새등 조류 사냥을 잘하는.. 새 조져놓기 챔피언이다..)
이번에 주운 살아있는 새는
깃털도 다 나 있는데 아직 잘 날지는 못하는,
비행연습하다 실패한 아기새로 보였다.
새줍할때도 무서워하며 도망가긴 했지만 날지도 못하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쉽게 '주웠을' 정도니..
5초만 늦게 발견했어도 우리 탄이의 장난감이 되었을 터다.ㅜㅜ
곧장 집으로 데려와
작은 상자 안에 화장지 등을 깔고 임시방편으로 둥지 비슷한 느낌이 나게 만들고..
아,, 참새새끼 너무 귀엽게 생겼다..! 단숨에 마음을 빼앗겼다.
새끼새에게 먹일 먹이를 위해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물론 벌레를 먹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동안 어미새들이 살아있는 벌레를 잡아다 열심히 먹인 걸 직접 엄청 많이 봐왔으니까.
그래서 벌레를 잡기위해 집 주변을 열심히 돌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평상시엔 종종 목격했었던 벌레들이 하나도 안 보였다.. 아 물론 방아깨비나 애벌레같은 내가 '잡을수 있을 만한' 곤충들.
혹시 톡톡 튀는 풀벌레들이 없을까 근처 풀이 좀 우거진 곳들을 훑으며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풀벌레는..보이지 않았다 ㅜ.ㅜ
그러다 생각해낸게 지렁이!
삽을 들고 텃밭으로 달려가 땅을 팠다.
우리집 텃밭은.. 개똥, 닭똥을 먹고 자라서인지 지렁이, 굼벵이들이 많이 산다. 조금만 팠는데도 지렁이들은 쉽게 찾을 수있었다.
평소 벌레 극히 혐오하는 내가
이 조그만 생명체 하나 돌보겠다고 이 부지런, 열정을 쏟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첫날은 엄마새가 없는 낯선 환경이 무서워서 그런지 잘 안 먹고 잠을 많이 잤다.
얼마나 애가 타던지.
먹어야 살지..
그리고 둘째날부턴 친해졌다.
이른 아침 5시부터 짹짹거리며 날 깨웠다.
전날 거의 안먹었으니 당연 배고프지..
준비해뒀던 작은 굼벵이, 삶은 계란 노른자를 먹였다.
지렁이는 물론 새끼새가 먹을 수 있을만하게 조그맣게 잘랐다.
핀셋으로 집어서 입 속에 넣어주면 잘 삼킨다.
처음엔 직접 쪼아서 안먹고 진짜 어린 새끼새처럼 입을 벌려 거기 넣어줘야 먹었는데
그 짧은 사이 폭풍성장을 한건지
손가락 위에 먹이를 올려주면 쪼아먹었다.
요즘 마당에 한창 물이오른 앵두, 오디도 따다가 조그맣게 잘라 (오디는 한알한알 떼어내어)
먹였다.
까맣게 익은 오디는.. 엄청 좋아하는게 느껴졌다.
한번 맛보더니 .. 오디의 세계로 빠져든 듯 했다.
아기참새에게 준 먹이 중 계란 노른자, 오디를 가장 잘 먹었고
아. 지렁이는 처음 1~2번 먹고 먹지 않으려 했다. 계란 노른자와 오디의 세계를 알고나서 그런지 입에 대줘도 한번 물다가 뱉어냈다.(뇌피셜)
지렁이는 먹어보지 않아 몰랐는데 맛이 상당히 없나보다.
아님 본능적으로 잘 맞지않나? 참새-지렁이 유해성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없길래.. 그냥 줘봤는데 안먹길래
지렁이 주기는 패스.
그래도 좀더 영양가있는 먹이를 주고싶어 (살아있는 벌레)
내가 잡기 힘드니,,
인터넷으로주문했다.
밀웜.
살아있는 밀웜.
그런데..
배송이 오기 전..
아기참새 짹짹이는 떠났다.
내가 출근한 사이, 엄마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뒀는데 그새 날아갔다고 한다.
깃털이 다 자란, 성장이 꽤 된 참새아가라
얼마 되지 않아 떠나보내야 함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정이 엄청 들었는지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하고 보내고 싶었는데.
걱정이 가장 많이 됐다.
야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잘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
.
어쩌다보니
참새 주려고 주문한 밀웜을,,
키우게 되었다.
마당에 있는 상추 뜯어서 통에 넣어놨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뼈(?)만 남아있다..
암튼.
이번에 어린 생명체를 짧게나마 돌보며 느낀점.
육아의 피곤함과 힘듦, 그러나 이보다 배는 더 큰 행복감.
그리고 만남을 예상할 수 없이, 떠남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
'봄 여름 가을 겨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를 (2) | 2020.08.07 |
---|---|
운이 좋았던 어제들, 그리고 오늘. (4) | 2020.07.11 |
감사한 일들들들들들 (6) | 2020.05.13 |
할아버지 장례식, 느낀 것들 (5) | 2019.12.30 |
밤보단 낮 (1) | 2019.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