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하 추미애)이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했고,
현재 추미애는 인사청문회를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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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는 법원에서 판사로 10여년간 일하다,
제15,16,18,19,20대 5선 국회의원이자 더불어민주당 전 당대표였던 계속 고위공무원직에 몸담고 있던 사람.
사법부에서 입법부로 위치를 옮겼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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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추미애라는 사람을 좋아한다.
권력있는 자에게도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강단있는 모습,
그리고 가장 기본이지만 고위공직자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원칙을 지키는 모습.
아닌 건 아니라고 웃으면서 시원하게 거절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의 추미애 법무부장관 지명 소식.
너무 기쁜 소식인데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 가족들이 어떻게 들쑤셔졌는지 생각하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한 사람의 지지자로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그녀의 미담을 알리기 위해 지지글을 쓴다..
아래는 내가 추미애 후보자를 응원하는 이유이자 추미애 별명이 추다르크가 된 이유.
#추미애가 추다르크로 불리는 이유
1. 2007년 폭로된 삼성 내부문건 속 '돈 안 받는 사람'으로 추미애 거론됨.
2007년 ,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이 법조인, 정치인들에게 돈을 돌렸다고 양심선언 폭로를 하며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사항이 적혀있는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엔 추미애 의원이 '돈 안 받는 정치인'으로 표현되어있다.
- 관련 문건 내용: '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등)에게 주면 부담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임. Wine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볼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Wine 몇 병 주었다고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임.'
전문 참조: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8&aid=0000847616&sid1=001
이 문건이 공개되고 일파만파 퍼지자 여러 기자들이 추미애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였지만 추미애는 거절.
'청렴한 정치인'이라고 홍보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됐을 텐데 추미애는 그런 거엔 관심이 없었다.
신념은 그저 묵묵히 지키면 되는 건데 과장성 기사들로 소란을 일으키기 싫고 당연히 했었어야 할 행동이 선행인 양 부각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
2. 삼성 공화국에서 이건희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
추미애는 2004년, "한나라당에 불법 정치자금을 준 것으로 드러난 이건희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당장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 삼성은 돈이 많고 그 돈을 이용해 권력자들을 제 편으로 만든다. 그래서 국정원보다 더 높은 정보력을 가졌다는 말도 있는 삼성. 추미애는 그런 삼성이 돈으로 포섭하지 못한 사람이기도하고 삼성의 황제 이건희도 잘못을 했으면 처벌해야한다고 당당히 언론들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다.
3. 남들의 시선, 잣대보단 소신.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1970~80년대, 대구 출신 추미애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고있던 호남출신 남자와 7년 연애 후 결혼.
게다가 추미애는 2007년,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유세단장으로 활동하며 고향이자, 전국에서 지역감정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 야권의 불모지- 대구에 내려가 선거운동을 했다. (직전 대선인 제14대 대선에선 대구에서 유세를 하던 야당 운동원들은 돌을 맞기도 하던 때였다고 한다.)
4. 판사시절
추미애는 정치인이 되기 전, 1985~1995년. 10여년 간 판사로 일했다.
판사 초임 시절인 1985년은 전두환이 대통령이었을 때였다. 군부 정권의 독재자 전두환.
전두환 정권 땐 수사기관이 공안정국*을 등에 업고 구속영장을 남발하였는데 이때 추미애는 법적으로 인정이 안 되면 모두 영장을 기각해버리는 까칠한 판사로 유명했다.
(*공안정국: 집권세력이 반대 세력 탄압을 위해 그들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며 정치적 탄압을 하던 정국상황.)
그 중 유명한 사례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책 이야기. 당시엔 이 책 외에도 상당수의 책들이 '불온서적', 소위 빨간책들은 불온한 사상을 담은 책이라며 출판, 반출입 등이 금지되었다. 검사들은 심지어 불온서적 단속을 위한 압수수색도 실시하였다.
검찰들은 이 '불온서적' 압수수색을 위해 영장을 청구하기 일쑤였고 법원들은 영장을 발부해줬다.
춘천지방법원에서 초임판사로 일하던 추미애에게도 예외없이 영장이 청구되었다. 불온서적이 있는지 단속해야 한다며 전국 서점을 압수수색 해야하니 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이때 추미애는 부당하다며, 영장을 기각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한 영장기각이었다고 한다. 법원장의 야단에도 추미애의 신념은 굽혀지지 않았다..
추미애는 또한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 규탄시위에 참여한 대학생들에 대한 구속영장들도 모두 기각했다.
나이 어린 막내 초임판사에다 여성의 인권이 지금보다 낮았던 시대에도, 당당했던 추미애.
이러한 과거 미담만 봐도 그녀의 강직한 성품을 알 수 있다.
판사시절 추미애는 , 무법자 검찰들의 권력남용을 상대로 홀로 싸워봤던 인물.
5. 언론 무서워 않는 패기
언론이 언론같지 않으면 가볍게 무시해준다.
안 좋게 기사 나가는 거- 언론 플레이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다.
# 노무현 탄핵 주도자?
추미애는 10년간 하던 판사를 그만두고 '세탁소집 딸이 혼탁한 정치판을 세탁하겠다'며 15대 총선에 첫 출마하였고
15, 16, 18, 19, 20대 총선에서 모두 승리한 5선 중진의원이다.
중간에 낙선한 17대 총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찬성으로 인한 역풍 때문이었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추미애는 노무현 후보를 누구보다 앞장서 지지했고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탄핵 여론이 불붙었는데 처음엔 탄핵에 반대하던 추미애는 당론(민주당)에 의해
결국 노무현 탄핵 찬성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추미애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15km 거리를 3일간 삼보일배하며 속죄를 구했다.
당시에 큰 실수를 했던 추미애-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어떤 세력들은 특히 그녀가 당대표가 되고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더더욱 추미애를 '노무현 탄핵의 주도자'라며 배신자 낙인을 찍으려 했고 아직까지도 그러고 있다.
그녀는 과거에 잘못을 했다. 그런데 충분히 사과와 반성을 했다. 누구들처럼 그런 적 없는 척 하거나 뒤로 숨지 않고.
그런데 그 사실을 왜곡, 과장하여 프레임 씌우는 언론과 일부 세력들-이 더 문제라 생각한다.
내게 추미애는 친문, 친노라고 할 수도 없는 본인 신념이 중요한 - 계파정치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주변 세력에 휘둘리지 않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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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들의 비정상적인 과도한 수사로 만신창이가 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가족으로-
국민들은 더욱 절실하게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10월 14일, 조국의 장관 사퇴 이후 50일이 넘게 지났다.
추미애 후보가 청문회를 무사히 마치면 내년 초쯤 , 장관에 취임한다.
5선 의원 + 집권 여당 대표 출신인 추미애는 입법부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국회의장이 될 수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그녀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는 건, 그리고 그녀가 장관직 자리를 ok했다는 건
그만큼 사법부-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가 크다는 것.
사법부에서 10년을, 입법부에서 16년의 경력과 내공을 쌓아온 추다르크.
법적 지식, 정치력, 리더십, 패기 - 모두 갖춘 추미애 후보자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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