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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생일 : 절망을 이겨내게 하는 힘

by Boribori:3 2019. 4. 4.


영화 생일의 개봉날. 전날부터 미리 예매를 해 두고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평소엔 스릴러나 판타지- 같은 쫄깃한 전개로 심장이 두근두근 뛰거나 초현실적인 상상 속 이야기들로 

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몰라 스트레스가 풀리는 영화를 좋아한다.

진지하고 무거운 뉴스들은 평상시에도 너무 많이 접하니까.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하는 여가 시간 만큼은 머리나 마음을 좀 쉬게하고 싶어서.

 

그런데 생일은 그 반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014년 4월 16일, 끔찍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나라를 비탄에 빠지게 했던 가슴아픈,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영화.

그런데 함께 그 시절의 아픔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영화는 꼭 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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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아들을, 오빠를 잃은 부모와 동생-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담담하게 담아냈다.

 

누구보다 착하고 듬직했던 아들 수호를 바다 속으로 떠나보낸 후, 자신만을 바라보는 어린 딸 때문에 죽지못해 살아가는 순남(전도연 분).

그녀는 남들 앞에선 전혀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면 죽은 아들의 옷을, 신발을 사고 아들이 썼던 방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고 밤이 되면 죽은 아들의 방에서 거억 거억, 통곡을 한다. 순남에게 하루하루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버텨내는 것.

오빠 수호를 누구보다 잘 따랐던 동생 예솔은, 세월호 참사 이후 물을 무서워한다. 욕조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어디 맛있는 것을 먹으면 죽은 오빠를 생각하며 포장을 해온다.

수호의 아빠 정일(설경구 분)은, 외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느라 세월호 참사 당시 아내와 딸 곁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2~3년이 지나 돌아온 집에, 차갑게 변한 아내는 이혼서류를 내밀고 딸은 아빠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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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순남이 딸 예솔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었다.

예솔은 죽은 오빠의 옷은 때마다 사오지만 자신의 것은 사오지 않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상해 밥을 잘 먹지 않으며 작은 투정을 부린다.

그런데 순남은 오빠는 지금 밥도 못먹는데 어떻게 반찬 투정을 하냐며 불같이 화를 내고 나가라 하고 잘못했다고 우는 예솔을 모질게 집밖으로 내쫓는다. 

예솔을 밖으로 내쫓으며 집안에 혼자가 된 순남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지만, 문밖에서 우는 딸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다.

엄마가 너무 못나서 그래. 미안해... 하면서, 어린 딸을 안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예솔은  오빠를 잃은 후, 그 나이대에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는 방법을 배우며 자란다.

사랑하는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한창 사랑받고 예쁨만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힘들어하는 엄마 앞에서 서운함은 드러내지 못한다.

어머니의 아픔과 절망을 항상 바로 옆에서 겪어내야 했던 예솔.

그래서 그렇게 현관 전등이 고쳐지길 원했구나, 하고 너무나 어리고 예쁜,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그렇게 안타깝고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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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아들이, 오빠가 죽었지만 남은 가족들은 그 아픔과 슬픔을 나누지 못하고 그 감정은 미움이, 분노가 되거나- 감추고 억눌러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상실은, 모두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은 어떤 아픔도 이겨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정일은 차갑게 변한 아내와 자신을 경계하는 딸아이에게 천천히, 꾸준히 다가간다.

자신도 누구보다 많이 힘들고 괴로웠을 테지만,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에게 그 억울함을 분노와 실망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려 하고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웃들 역시,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순남을 내버려두지 않고 보듬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리고 마지막, 죽은 수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수호의 친구들, 이웃들, 가족들이 모인 장면.

생일을 기리기 위해 모인 영화 속 그 장면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들과 함께 둘러앉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슬픔과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모여,

그 사람과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함께 회상하고 기억하며 ,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절망에 빠진 사람을 , 절망으로부터 꺼내는 존재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다.

서로를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

절망을 이겨내게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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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은,

자극적인 장면들, 대사들로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지도, 부추기지도 않는다.

실제 사건의 유족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관찰하는 듯한 제3자의 시선을 이용해 정말 조심스럽게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영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 속에 서서히 녹아들게 해 느낄 수 있게 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 세상에 '남아있게 된' 이들의 상처에 함께 공감할 수 있게 .

서서히 녹아들다, 완전히 젖어버렸던 영화,

생일.

 

이런 영화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세월호 유가족분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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