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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자

장자연 사건 정리. 조선일보 방사장 패밀리

by Boribori:3 2019. 3. 8.

 

 200937. 10년 전 오늘.

이날은,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장자연이라는 29살의 신인배우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다.

 

 

당시 경찰은 그저 안타까운 자살로 간주했으나, 그녀의 죽음 사흘 후, 죽기 일주일 전 남긴 문건이 공개되었다.

이른바 장자연 문건. 문건 속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어서 장자연 리스트라고도 부른다.

 

 

 

(장자연 사건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장자연 문건. 검은색 모자이크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시사인에서 가린 것. / 자료출처- 시사IN)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사장님이 방 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몇개월 후 김성훈(기획사 대표 김종승의 가명) 사장이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  ...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 - 고(故) 장자연이 남긴 문건 중 일부

 

문건에는 장자연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  언론, 정/재계의 유력인사들이 장자연에게 100여차례 이상 술접대, 성상납을 강요했으며 폭언, 폭행, 심지어 감금을 했다는 내용과 그들의 명단이 담겨있었다.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생각이었는지, 장자연은 문건에 작성날짜, 이름, 사인, 주민등록번호, 지장까지 남겼다.

 

이 문건은 연예인들이 많이 겪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끝날 뻔 했던 사건의 본질을 바꾸었다.  

 

경찰은 이 문건이 공개되자 문건에 나오는 해당 인물들에 대해

27곳 압수수색, 14만여건의 통화내역 조사 등을 하며 몇개월 간의 ^대대적인 수사^를 했지만

'조선일보 방 사장'과 '방 사장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을 포함한 유력인사 20명은 혐의없음 처분으로 끝이났고

그녀의 소속사 대표(김종승)와 매니저(유장호)이 2명만 검찰 기소되었다.

 

그래봤자 김종승은 폭행죄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장자연 리스트를 세상에 공개한 매니저 유장호는 김종승 명예훼손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그저 폭행죄와 명예훼손죄.

즉,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 중 성접대 강요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문건에 나온 주요 유력인사들은 무혐의에 무처벌...!

 

 

대부분의 언론들도 장자연 문건 속에 나온 '조선일보'관련 내용은 기사화하지 못하였다.

장자연은 죽기 전 남긴 문건에 조선일보 사장이라고 정확히 명시했지만 언론들은 이를 '언론계 유력 인사' 등으로 대충 에둘러 보도했다.

평상시엔 자극적인 소식들과 이를 받아써서 확대재생산 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 언론들은,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ㅇㅇ일보 ㅇㅇㅇ사장'이라며 언론 이름조차 공개하지 못했다.

 

 (2009년 5월 16일자 조선일보 기사)

 

물론 용기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가만있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장자연 사건을 언급한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과,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장자연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이정희 전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보도한 기자들에 대해서도 1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렇게 조선일보는 권력을 이용해 언론인들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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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10여년간 구천을 떠돌았다.

해결되지 못한 채.

물론 장자연 사건은 한동안 뜨거운 이슈여서,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 

수사기관과 언론도 시끌벅적 요란스럽게 열심히 일하는 듯 하였다.

검경찰이 조사하고 언론에 진행 소식을 던져주면 선정적인 키워드로 장자연 관련한 기사를 앞다투어 올렸고

관련 루머들을 의혹제기랍시고 올리면 조회수는 치솟았다.

 

그러나 점점 본질은 왜곡되고, 정작 밝혀져야 할 문건 속 사람들의 혐의는 잊혀지며 그렇게 국민들 관심 속에서도 멀어져갔다.

 

 

 

.. 그러다 정권이 바뀌고, 2018년 4월.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사건을 조사대상에 올렸고, 지난 해 7월부터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하 방용훈)이 장자연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고인이 세상을 억울하게 떠난지 9년이나 지나서야.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따르면,

9년전의 경찰은 방용훈이 장자연을 만났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었으며,

검찰은 밤의 조선일보 사장은 방용훈이라는 말을 들어서 알고있었으면서도

방용훈 사장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당시 사건수사 때 혐의 선상에도 오르지 않았을 수 있었다.

 

방용훈의 조카이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하 방정오)도 장자연과 술자리에서 만난 적 있다.

2008년 10월 28일, 장자연 어머니의 기일날 . 서울 청담동 룸살롱에서.

그날 장자연 기획사 대표 김종승은 회사 법인카드로 술값 200만원을 계산하고 장자연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2009년 10월 29일 새벽 1시 22분, '직원들 앞에서 말 조심해.'라고.

 

통화내역 조사 결과, 10월 29일 새벽~오전에 김종승-방정오는 연락을 3번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지휘하던 검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한 핑계같은 소리를 하면서.

'이미 장자연, 김종승의 통화내역을 조회했기 때문에, 원래 이중 압수는 하면 안 된다!'고.

 

 

 

 

왜, 경찰은 그 많은 수사인력과 길었던 수사기간에도 제대로 수사를 못해서 (안 해서겠지만)

검찰에게 핵심 증거를 하나 전달 못했을까.

( 2009년 수사기록엔 장자연과 기획사 대표 김종승 등 사건의 핵심인물들의 통화내역 자료조차 없었다고 한다.

장자연이 숨기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핸드폰은 모두 3대였으나, 당시 경찰 수사기록엔 이 핸드폰들의 1년치 통화내역과 문자메시지,

연락처 등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었다. 

특히 장자연이 당시 주로 사용했던 핸드폰은 분홍색 모토로라 기종이었다는데, 그때 경찰이 압수한 핸드폰엔 이 핸드폰이 없었다.

또한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 조사단은 지난해 10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

당시 경찰이 장자연 집과 차량을 압수수색하는데 걸린 시간이 고작 57분밖에 되지 않았다고, 장씨의 핸드백도 열어보지 않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수첩, 명함도 수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

그리고 왜 검찰은, 증거가 부족하니 추가조사를 더 해 오라는 상식적으로도 당연한 지시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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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자살로 숨진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논란은 현재진행형.

 

문건에 등장하는 관련자들이 돈과 명예가 있는 권력자들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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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한 연예인의 그렇고 그런 단순 자살문제로 끝나선 절대 안 된다. 

장자연 사건은 한국사회 권력층들이 당연시 여기는, 상대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추악하고 더러운 접대 문화와 성 착취,

그리고 부패한 수사기관들의 권력층과의 유착관계가 모두 얽혀있는 거대한 문제이다.

 

 

철저한 수사로 장자연 사건에 대한 모든 의혹들을 해소하는 것은  고인과 유족들의 억울함을 푸는 것은 물론,

앞으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 아니 지금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

수많은 현재, 미래의 장자연들에게 용기를, 부패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며 이러한 비극을 막는 중요한 일이다.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수사기관들과 언론, 재계 사이의 부당한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 역시,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자살한 방용훈 사장의 아내에 대해 방송한 서정문PD에게, 방용훈이 했던 협박 아닌 협박 . / 사진- 지난주 3/5 방송된 PD수첩)

 

그녀의 불쌍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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