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25일은,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 집회참여를 하다, 경찰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300일이 넘는 시간(317일)을 혼수상태로 지내오시다, 결국 목숨을 잃으신 날이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아 사망하셨는데, 그를 그간 진료한 서울대병원에서 공식적으로 내보낸 사망진단서엔 '병사'라고 기록되어 있었고 따라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정정촉구는 빗발쳤었다. 그래도 이 진단서는 수정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이 사망진단서가 수정되었다는 기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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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직 이 사건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1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한, 농민 백남기씨
2015년 11월 14일, 서울. 1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렸다.
1차 민중총궐기대회는 당시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 개혁,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재벌책임강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을 요구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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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위키피디아)
시위 도중, 경찰과의 충돌. 그리고 살수(殺水)대포.
이 날, 시위대의 행진을 막으려는 경찰들과 계속 행진하려는 시위대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쓰러진 그 농민의 이름은 백남기.
촘촘히 세워진 경찰버스는 차벽이 되었고 경찰들은 퇴진을 요구하며 물대포를 쏘았다. 이에 물러서지 않고 경찰버스를 밧줄로 당겨 끌어내려던 시위 침가자들 중 백남기씨가 이 물대포에 머리를 정면으로 맞은 것.
(사진출처-한국일보)
쓰러진 그는 구급차로 실려가 서울대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으나 ,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약 1년이 지난 2016년 9월 25일, 별세하셨다.
사람 죽이는 물대포의 위력
물대포가 얼마나 세길래 사람을 죽이나, 싶은데 강화유리도 아주 쉽게 부수는게 물대포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2016.10.22자로 방송된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 편을 봤는데 방송을 보는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던 기억이 난다.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서.
이 물대포를 이용하여,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바레브 방벽을 격파하여 부숴버렸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욤키푸르,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렇게 전쟁용 무기로 쓰이는 것이 물대포이다.
그 엄청난 압력을 준 물대포를, '사람'을 보고 쏘다니.
이후 밝혀졌지만, 백남기씨를 사망으로 이르게 한 살수차의 수압은 약 15bar(3000rpm)에 가까웠다. 15bar 수압은 50층 건물의 꼭대기층까지 물을 쏘아올릴 수 있는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 수압으로 경찰은, 백남기 씨가 쓰러진 이후에도 약 15~20초 정도 물대포로 쓰러진 그를 향해 계속 가격했다.
전쟁중인 적군에게 쏜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시민을 대한민국 경찰이.
사과하지 않는 경찰, 그리고 고인의 사인(死因)을 병사로 기록한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
그런데 경찰은, 이것이 불법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정당한 직무집행'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에는 그의 사망원인이 '심폐정지, 급성신부전, 급성경막하출혈'로, 사망종류는 "병사(病死)"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고인 백남기씨의 주치의는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백선하였다.
물대포에 맞기 전에는 멀쩡히 시위에 참가했던 백남기씨가, 3000rpm의 엄청난 수압을 지닌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이후부터 사망 전까지 쭉 의식을 잃은 채로 지냈으니- 어린아이가 봐도 이는 물대포로 인한 사망인데, '병사'라니?
이후 이 사망진단서는 큰 이슈가 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 여러 분야의 관련 전문가들, 의사들, 시민단체 등은 이는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라고 하였으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기록하라고 지시한 그 본인(백선하 교수)은 그 진단은 자신의 그간 진찰동안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라하며 끝까지 외인사임을 부정하였다. 국정감사에 나와서도 문제가 없다고 아주 강하게 주장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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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진단서가 이제와서야 수정된 이유
그러다 오늘 , 2017년 6월 15일. 서울대병원이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를 수정했다는 뉴스가 터졌다
사망의 종류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왜 이제서야? 지금은 2017년 6월 중순이다. 백남기씨가 사망했던 날은 2016년 9월 25일이고.
당시에 그렇게나 많은 논란이 일고 항의가 빗발쳤을 때에도 '병사'그대로 있었던 사망진단서가 이제와서야.
서울대병원 측에서는 올해 초부터 사망진단서 수정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이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왜 하필 올해 초?
JTBC에서 고 백남기씨 장녀 백도라지씨와 전화연결을 한 내용을 방송했는데,
백도라지씨 말을 인용한다.
'저희가 올해 1월쯤에 병원을 상대로 사망진단서 정정청구 손해배상청구를 했는데요. 그런데 이게 의료분쟁에 해당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의료분쟁 사건이 생기면 그 서울대병원 측에서는 의료윤리위원회가 열린다고 설명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이 건을 다뤄서 그때 저희가 소송을 제기했던 시점부터 절차를 시작하셨다고 들었고. 그리고 서울대병원 내부에서도 진단서를 정정해야 된다, 이런 공감대가 있으셨고. 그런데 절차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왜냐하면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하느라고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즉, 고 백남기씨의 유족이 올해 초에 정정청구를 하자 의료윤리위원회가 열렸고 - 이 전례없는 사건의 절차를 어떻게 밟을지 논의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것.
또한 백도라지씨에 따르면,
백남기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당사자인 경찰 쪽에서는 개인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아무 사과가 없었다고 한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내일, 백남기 고인의 사인이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뀌게 된 것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것인지. 문제가 된 물대포 직사살수 방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 2015년 11월 18일, 유족들이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강신명, 구은수 경찰청장 등의 징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모두 밝혔으면 한다.
(자료출처-세계일보)
아니 , 내일이 아니고 벌써 오늘이다.
참 오래 끌었다. 검찰은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수사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도 이번에 백남기씨 사인이 병사가 아니라 외부원인에 의해 사망했다고 공식적으로 정정되었으니. 수사를 하는 척이라도 하겠지?^^
또한 지금 정부는,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이다.
(15년도 11월달에 고발장을 접수받고 10개월이 넘도록 수사를 하는둥 마는둥 했으며 아무 진전이 없다가 ~ 백씨가 결국 사망하자 경찰이 부검영장을 신청하자 그때서야 움직이는 것 같아보였다. 여태까지 강신명 경찰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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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자를 수사하여 그 잘못을 밝혀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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