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인가?
개인적으로 내 인생드라마 중 하나인 나의 아저씨의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박해영 작가님이 극본을 맡으셨다는 것만 인지한 채, 그 외엔
내용도. 나오는 배우들 정보도 단 하나도 모르는 채로 나의 해방일지 1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방일지는 내 인생드라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드라마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출퇴근 지옥. 쳇바퀴같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좋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를 보며 내가 느낀 가장 큰 메시지는 [자존감]과 [선택]이 삶에 있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에 대함인데- 독특하게 낯설고 생소한 단어들을 사용한다.
해방. 추앙. 환대..
#해방
'해방'.
사실 해방이란 말은 꽤 낯설다. 실생활에 잘 쓰이지 않는 단어같다. 역사공부할때 일본에게 독립하다, 해방되다~ 말고, 평상시에 쓰거나 들은 적도 없는 듯.
어쨌든, (제목부터 그러하지만)드라마에선 이 해방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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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청하던 염미정 외 2명이, 회사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사내 동아리인 해방클럽. 멤버들은 각각 자신이 살며 느끼는 답답함, 벗어나고픈 감정 등을 일기처럼 노트에 기록하기로 하고 이를 가끔 만나 서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단, 아무런 조언이나 위로는 하면 안 되며 들어주기만 해야함.)
증오, 불안, 두려움, 무기력함 등의 감정으로 자기 자신을 옥죄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을 억누르던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어 보기로 한다.
#추앙
드라마엔 해방처럼 낯선 단어가 계속 등장하는데. [추앙]이라는 단어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아 모든 관계가 노동인 것 같은 염미정은 구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며, 다짜고짜 자신을 추앙해달라고 한다. 구씨는 시골로 내려와 낮엔 미정이네 아버지 공장 일을 도우며 주급 수당을 받고 그 돈으로 밤엔 매일 말없이 소주만 마시는- 자신보다 더 공허해보이는 사람이다. 미정은 이런 구씨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난 한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추앙이라는 단어를 언제 썼더라, 어렴풋하게 개념만 알고 있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나처럼 궁금했던 구씨 역시 사전을 찾아본다.
-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 존중하다. respect/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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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자 달려들었다가 자신의 볼품없음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반복적인 관계. 어디서 답을 찾아야 될까?"
"계속 버려지는 기분이었어. 어떤 관계에서도 난, 한번도 먼저 떠난 적이 없어. 늘 상대가 먼저 떠났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나한테 문제를 찾는 건 너무 괴로우니까, 다 개새끼로 만들었던 거야.
그런데 당신은, 처음부터 결심하고 만난 거니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생각은 하면서도 사실 그 대상을 존경 또는 존중하진 않는다. 그래서 자주 싸우고 상처받고 회피하고 놓아버린다.
그래서 염미정은, 사랑이 아닌. '추앙'받길 원한다. 가득 채워지고 싶어서.
욕망의 대상으로 이용당하는 사람이 아닌, 존재 자체로 존중받고 싶은 모든 인간의 욕망.
그리고 자신부터 상대를 '추앙'해보기로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기대 없이.
"전적으로 준 적도 없고 전적으로 받은 적도 없고. 다신 그런 짓 안 해. 잘돼서 날아갈 거 같으면 기쁘게 날려보내 줄 거야. 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한 번 만들어 보려고요. 그런 사람. 상대방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에 나도 덩달아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보려고요. 방향 없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이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점점 마음을 열며 내면의 결핍을 채워나간다. 함께 걷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채 서로를 지지해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주기로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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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가진다. 거의 대부분이, 내가 선택해서 만든 관계가 아닌, 환경이 정해준 수동적인 관계이다.
직장동료.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들. 선후배들은 물론 가족들도. 내가 원해서,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관계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그 조직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관계는 지속해야 하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관계에서 역시 (애인이나 지인 이상의 친한 친구) 상처를 받고 좋지 않게 끝이 난다. 그래서 점점 인간관계에 대한 염증이 생긴다.
그런데 추앙은, 온전히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거라고 한다.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 얻게 될 이익은 계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것.
염미정은 드라마 회차가 거듭할수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한다.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살았던, 태어났으니 재미는 없더라도 그저 그렇게 버티며 하루 하루를 지겹게 살아내는 염미정이,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을 하고,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웃게 된다.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수동적, 자기 방어적에서 능동적으로 변한다.
서울에서 화려했던 클럽/조폭 일을 했던 과거로 인해 인간 자체를 싫어하게 된 구씨 역시, 그런 미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과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사랑이 가득해서 나오는 모든 것이 사랑이야"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해방된 것 같은 밝은 표정의 미정의 독백으로 드라마는 16회를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드라마 자체는 끝인데, 내용엔 결말이 없다.
어딘가 염씨 삼남매가 살고 있을 것 같고 어딘가에 구씨가 구슬땀 흘리며 묵묵하게 일하고있을 것 같다.
뭐랄까. 현재진행형 같은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까지 보여주고 미래는 상상에 맡기는.
구씨는 미정이와 언제까지 만날지, 클럽 일은 계속 할지, 창희는 편의점 그만 두고 장례지도사의 길을 걸을지, 현아는 상처를 이겨내고 어떻게 살아갈지, 태훈과 기정은 정말 50살에 결혼하게 될지, 염제호씨는 재혼한 여자에게도 말이 없고 무뚝뚝할지,,,
주인공들이 모두 사랑스러웠던 드라마.
모두 자신을 옭아매던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누군가에게 추앙받고, 추앙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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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 한 화, 그 화를 구성하는 모든 장면들이 마음을 따뜻몽글하게, 충만해지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였다.
박해영 작가의 스타일이 이런 것인지, 나의 아저씨에서처럼 지독히 선명한 민낯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낸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누군가의 시선이나 기준에 의해 떠밀려 하는 것이 아닌- 나에 의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 사람과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통찰하게 만드는 좋은 드라마였다.!
배우분들도 어쩜 그리 연기를 잘하시는지.
특히 김지원, 손석구, 이엘 배우는 빛이 났다.
세 배우 모두 여러 드라마나 영화 등에 나와 이미 많이 유명한 배우였지만 내가 이들의 연기를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름만 대충 들어봤을 뿐..
이제 이들 배우가 나온 작품은 다 찾아볼 것 같다,,,,
이미 구씨 앓이는 시작되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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