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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자

[The things they carried] 베트남전쟁 배경/원인 정리.

by Boribori:3 2021. 6. 7.

The things they carried 라는 책에 빠져서 처음으로 자세히 공부하게 된 베트남전쟁 역사 정리 타임.

#베트남전쟁(1955~1975)

 

베트남은 오랜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였다.

1858~ 프랑스지배 -> 제2차세계대전~ 일본지배 -> 1946~1954 프랑스지배(2차세계대전 일본 패배 후)

베트남은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고, 독립운동을 이끈 호찌민 지도자의 주도 하에 1954년, 프랑스를 물리친다.

호찌민 (1890~1969),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데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독립이 오나 했더니, 이제 다른 서구 열강들의 간섭을 받는다. 미국 등의 강대국들은 베트남이 사회주의국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뜩이나 중국, 소련때문에 골치 아픈데 베트남만은 막아야해! 

미국은 프랑스가 물러난 뒤  중국, 소련 등을 견제할 전략적 요충지로서 베트남을 노렸고, 베트남에 반공 정부가 세워져야 한다며 국가를 남과 북으로 가르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렇게 남베트남엔 미국이 지원하는 정권이, 북베트남엔 호찌민이 이끄는 정권이 세워진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역사와 정말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이자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응오딘지엠은 부정부패, 불교탄압, 독재정치를 일삼으며 정권에 반대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모두 공산주의로 몰아 처형하였다. 이에, 남베트남 사람들 대다수도 호찌민을 지지하며 반정부시위를 하고 베트콩*을 지원하며 남베트남 정권과 싸웠다. 호찌민은 베트콩을 지원했다.

*베트콩(Viet Cong):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1960년 12월 결성되어 남베트남 및 미국과 전쟁을 치른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 , National Liberation Front of South Vietnam) 소속.  베트콩은 '베트남 공산주의자(Vietnamese Communist)의 약자로, 이들을 경멸하며 응오딘지엠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베트남은, 프랑스로부터 벗어났음에도 남북 대립체제에 갇혀 피튀기는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치른 전쟁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 불려, 곧바로 이어진 1955~1975 이뤄진 베트남 전쟁을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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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3: 케네디대통령의 베트남 전략>

베트콩 및 NLF의 활약을 지켜볼수없었던 미국 케네디대통령(제35대 대통령/ 1961~1963)은 남베트남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고문단을 파병한다. 1961년 당시 미국은,  베를린장벽 형성,  쿠바 피그스만 침공 실패 등으로 공산주의가 확산될까봐, 미국에 대한 평판과 체면이 깎일까봐 조바심이 난 상황이었다. 케네디는, 베트남에서라도 공산주의가 이기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자료-위키피디아

케네디는 1961년 네이팜 폭탄 투하와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와 같은 인체에 치명적으로 해로운 고엽제 살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며 사실상 무차별 살상을 용인했다. 

그러던 어느날 케네디는 암살당하고 세상을 떠난다(1963.11). 그 뒤를 잇게된, 존슨 대통령(제36대 대통령/1963~1969)도 북베트남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소규모 특수전을 노린 케네디와는 달리 존슨은 본격적인 전면전을 위해 군사를 본격적으로 파병하기 시작한다. (베트남 주둔 미군수는 1961년 2천명에서 1963년 16,500명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총 약 50만명을 파병하였다.)

그런데  전쟁을 하려면. 그것도 옆나라도 아니고 아주 먼~나라의 전쟁에 개입하려면 괜찮은 명분이 필요한데.. 그렇게 '통킹만 사건(1964)'을 이용한다.

 

<미국의 개입: 통킨만 사건(1964)>

통킹만(Gulf of Tonkin)은 북베트남, 중국 사이에 있는 해상 지명인데 여기서 북베트남과 미국 , 양국 전함 사이에 교전이 생긴다.

1)1차(1964년 8월 2일) -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미군 USS매독스함을 선제공격하여 (남베트남 함선으로 오인했다고 함) 교전. 미군 측에 피해는 거의 없었음.

 

자료-위키피디아

 

2) 1964년 8월 4일 - 사실이 아닌 미국의 주장이라는 논란이 많다.

미국은 1차통킹만사건이 일어난 다다음날, 매독스함이 재공격 당했다고 하는데 , 펜타곤 페이퍼에도 이 2번째 공격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있다.

당시 미국은 이 사건을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가하는 명분으로 이용했다. 2차례에 걸친 연속 선제공격이라니! 하며,  1965년부터 북베트남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개시했으며, 미국의회는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인정해주는 <통킹만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eb.archive.org/web/20070302114833/www.mtholyoke.edu/acad/intrel/pentagon3/pent4.htm

 

The Pentagon Papers, Gravel Edition, Volume 3, Chapter 2, "Military Pressures Against North Vietnam, February 1964-January 1965,

The Wayback Machine - https://web.archive.org/web/20070302114833/http://www.mtholyoke.edu:80/acad/intrel/pentagon3/pent4.htm Section 2, pp. 157-206 C. DIFFERENT POLICY PERCEPTIONS IN PLANNING 1. Two Basic Approaches: JCS and State-ISA The principal plannin

web.archive.org

 

이는 뉴욕타임즈 등 미국 언론에서도 미국이 전쟁개입을 위해 꾸민 일이라며 비난을 받았다.

theraucousrooster.com/2020/08/04/lbj-used-a-gulf-of-tonkin-attack-that-never-happened-to-escalate-the-war-in-vietnam-excerpt-from-dan-ellsbergs-secrets/

 

LBJ Used a Gulf of Tonkin Attack That Never Happened to Escalate the War in Vietnam - Excerpt from Dan Ellsberg's Secrets - The

First Full Day at the Pentagon for Ellsberg is a Memorable One 56 years ago, on August 4, 1964, President Lyndon Johnson used an attack on U.S. warships that never happened to justify “retaliation,” and the massive expansion of the U.S. war effort agai

theraucousrooster.com

www.commondreams.org/views/2014/05/13/newspaper-war

 

Opinion | The Newspaper of War

 

www.commondream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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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킹만사건으로 국가의 허락을 받은 미군은, 합법적으로 '보복' 및 '정당방위'이라는 명분으로 북베트남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밀림을 없애  베트콩들이 숨어있을 곳을 막는다며 고엽제(초목을 고사시키는 제초제)를 마구 살포하며 식물은 물론 군인, 민간인 등 수백만명을 화학물질로 인해 고통받게 했다. (1969년, 미국은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이 인체에 들어간 뒤 수년이 지나면 각종 암과 신경계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며 이 약제의 사용을 중지하였다.)

베트남 전쟁기간동안 베트남은 물론, 라오스, 캄보디아 지역에 약 76,000,000L의 고엽제가 살포되었다고 한다. 

고엽제를 살포하는 미군 / 사진-WNYC

 

또한 비무장 민간인-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임산부, 아이 등 상관없이 모두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중에서도 미라이 학살은 정말 처참하다.

 

 

 

 

그뿐아니라 비행기로 네이팜(3,000℃의 고열을 내면서 반지름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들고, 사람을 타 죽게 하거나 질식하여 죽게 한다.)탄을 투하해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민간인들을 포함해 무차별 살상을 하였다. 1965~1968년 - 이 3년동안 북베트남엔 백만 톤에 달하는 폭탄과 미사일이 퍼부어졌다고 한다. 1965년, 베트남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만 20만명.

1972.06.08 미군의 네이팜탄 투하를 피해 도망치는 베트남 아이들/ 사진- AP photographer Nick Ut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국민들의 독립열망은 강렬하여, 베트콩들은 미군에 끝까지 맞서 싸웠다. 우거진 밀림과 지형을 이용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월맹군)의 게릴라전에 미국은 속수무책이었다.

The infographics show

당황한 미국은,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우방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베트남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된다. (유럽 여러 나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했다.) 미국을 돕기위해 군대를 파병한 국가들 중 우리나라가 가장 많은 지원을 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미국의 요청이 있기도 전인 1961년, 케네디대통령에게 한국군 파병을 먼저 제안했었다고 한다.  

https://m.youtube.com/watch?v=V9bAosf1XL0

 

대한뉴스 제 580호-월남소식

제작일: 1966-07-23 맹호부대 기갑연대,번개9호작전위해 캄보디아 국경으로 이동. -맹호부대 기갑연대,캄보디아 국경 호지명 루트를 봉쇄하는 번개9호작전 펼침. -맹호부대의 원시밀림지대 수색

m.youtube.com

대한민국은 1965~1973년까지 약 32만명의 청년들을 베트남으로 보냈고 이를 대가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엇다. 

자료-위키백과

 

#베트남전쟁의 종결

1965년 미국의 본격적 개입 이후 8년간의 전쟁 끝에 1973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1969년, 존슨 뒤를 이어 리차드 닉슨이 미국대통령이 되는데 닉슨은 그 유명한 '닉스 독트린'을 발표하며 전쟁을 종결하려는 의지로 베트남에 주둔시킨 미군에 철수명령을 내렸다.

사진- EBS

베트남전쟁을 치르며 들어간 천문학적 군사비는 물론 희생된 수많은 미군들로 인해 분노한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했던  이유가 크다. (1968년부터 미국에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규모는 점점 확산되었다.)당시 미국은 이 전쟁으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미국으로선 얻은거 하나 없는 상처뿐인 굴욕적인 전쟁이었다.

그리고 결국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이은 무력통일을 이루어 베트남은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다. 

 

수많은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고 천문학적 군사비와 물자를 소모했으며 자국의 청년들을 희생시켰던, 미국의 베트남전쟁은 결과적으로 이룬 것 하나 없었다. 전쟁의 모든 과정에서 정당성은 하나도 없었다. 사회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했으나 베트남은 결국 사회주의공화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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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게 만들었던 내 인생 명작 중 하나가 된 The Things they carried라는 책 소개.

직역하면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이라는 뜻인데 베트남 전쟁에 파병당한 미군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징집통지를 받고 명분없는 전쟁에 끌려가기 싫어 캐나다 국경으로 도망간 어린 청년의 고통부터, 순수하고 밝았던 사람이 베트남에 간 이후로 괴물로 변해버리게 된 과정 등 여러 에피소드들을 담고있는데 빨려들어간다.  작가는 실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인데, 이 책의 장르는 소설이다. 작가는 말한다. 전쟁 이야기엔 진실이 없다고. 전쟁은 자신의 경험조차도 믿을 수 없게 만든다고. 

 

올해 말이나 내년 즈음에 책이 영화로 나온다는데 너무 기대된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 톰하디도 나온다니!

 

오늘은 6월 6일 현충일이다.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들을 추념하는 날. 

...아무것도 모른채,  나라의 부름에 의해 전쟁에 끌려가 원하지 않는 살상을 하며 괴물이 되어야했던 젊은이들. 사람을 죽이는 총칼을 든 군인이기 이전에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며 지키고싶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을 테다.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는 사회 지도자들은 전쟁터에 없다. 총알, 미사일, 수류탄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있지.   

전쟁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학살당한, 명령에 의해 학살을 해야했던, 그리고 죽기 전까지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 살아야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끔찍한 지난 역사를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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