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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이름 모를 들꽃

by Boribori:3 2019. 3. 20.

 

날씨가 좋아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얇은 외투만 걸친 채로 그저 걸었다.

 

생각해보니, 늘 출퇴근 거리를 운동가는 길을 운전해서 다니기에

하루 중 걷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예전에 수도권 쪽에 살았을 땐 늘 지하철, 버스를 타고 다녔으니 많이 걸어다녔었는데

이곳에 살고부턴, 가끔 어디 여행을 가거나 하지 않는 이상 정말 걷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시간을 내서 걷는데 이상하게 느껴졌다.

매일 차타고 지나가는 그 거리를.

분명 어제도, 그저께도, 엊그저께도 지나갔던 그 거리를 두 발로 걸으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을 머금은 봉오리들이, 길가에 풀꽃들이 보였다.

 

 

하루하루 따스해지는 날씨로 봄이 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연둣빛 생명들이 길거리에 흙 속에서, 보도블록 틈새 속에서 싹을, 꽃을 피우고 있는 걸 보니 새삼 정말 봄이라는 게 느껴졌다.

가장 좋아하는 꽃 중에 하나인 민들레도 노오-란 꽃잎들을 환하게 뽐내며 있는데 민들레 옆에 조그마한 푸른 꽃들에 눈길이 갔다.

 

완전 파랗지도 않은 은은하게 푸른, 청초한 색의 조그만 꽃잎 4장.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본 꽃으로 흔한 들꽃인 건 알겠는데 갑자기, 이름이 궁금해졌다.

 

평일날 점심, 매우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일부러 걸은 것에 뇌가 자극이 된 반사적 작용인가.

 

 

 

이 귀여운 꽃 이름은 뭘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검색을 했는데,

 

두둥.

 

개불알풀.

 

식물 검색 어플을 깔아서도, 포털사이트의 사진검색 기능을 이용해서도 더블체크를 했는데 이 이름이 맞았다.

 

이 귀엽고 예쁜 꽃이 도대체 어딜봐서..?

의문이 들어 이름의 유래를 검색해보니 열매가 개의 불알같이 생겨서란다.

누가 지었는지, 재밌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은 이름.

 

 

문득 김춘추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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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나와 다른, 전엔 몰랐던 존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건, 이름을 알려고 하는 것부터 시작이라 생각한다.

전엔 그저 길거리 풍경을 이루는 수없이 많은 물체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이 작은 풀이

오늘 이름을 알고 기억함으로 인해, 앞으로 보이면 반가울 것 같다.

화랑이를 봐도 생각이 나겠지.

 

 

 

또한 목적지로 가기 위해 걷는 것 보다,

목적지가 따로 없이 걷고 싶어 걷는, 오늘 같은 시간들을 좀 더 많이 가져야겠다고 느꼈다.

 

목적을 이루길 위해 무엇인가를 수단으로 하는 것은,

관심이 목적에만 가 있어, 그 과정은 기억도 나지 않기 쉽지만,

그 수단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간을 어떻게하면 좀 더 즐겁게 보내느냐,의 작은 해답을 얻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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