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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행/러시아-블라디보스톡

190202) 블라디보스톡 여행 첫째날.

by Boribori:3 2019. 2. 8.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여행, 그 첫째날.
몇개월 전. 한참 공허함을 느꼈을 때였던 것 같다.
긴 연휴 동안, 내가 사는 나라를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가장 싼 비행기티켓을 샀었다. 충동적으로.
거길 가보고 싶다-가 아니라 여길 떠나고 싶다- 였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22, 토요일 - 부산공항.
설 연휴 첫째날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낯선 어디가를 향해 떠나는 날, 들뜬 사람들로 어수선한 공항 안.
명절에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여행을 앞둔 사람들이 뿜어내는 산만하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혼자라는 것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졌다
 

원래 난 여행계획을 따로 세세하게 세우지 않는 편이다.

꼭 가보고싶은 곳, 정도로만 해서 대충 큰 루트만 그려놓는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아ㅡ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계속 미뤄두고만 있었는데 떠나는 당일날까지 아무 것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저 비행기 표 한장만 달랑.
5박 6일 동안의 짐 역시, 공항으로 떠나기 3시간 전에 싸기 시작했다.

짐을 싸다 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가장 필요한 것들만,  넣었다.

그 중 담을 수 있는 공간의 1/3은 도복이 차지.

정말 이상했다.
공항 안에서도 전혀 신이나지 않았다.
모두가 들떠있는 명절날에 , 가족들, 친구들이 함께하는 시간에 혼자여서 그런가?

.

.


그리고 비행기를 탔다.
왼쪽 옆자리엔 그땐 인연이 될지 몰랐던 러시아 친구 파샤가.
어떻게 말문이 트여,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무표정일 땐 몰랐는데 웃으니 정말 순수한 아이같았던 파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공항까지 파샤를 픽업 온 파샤 친구 제냐의 차도 얻어타게 되었고
괜찮으면 잠깐 친구네 바에 들려서 1시간 정도만 놀다 가자는 말에 흔쾌히 오케이했다.
 
(늦은 밤, 혼자 택시타는 것도 조금 무서웠는데 심지어 처음 만난 낯선사람의 차에 타다니. 그래도 두시간 넘게 그와 이야기 하면서 느꼈던 ㅡ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3자의 입장에서 들으면 납치당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닌 스토리 아닌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진짜 미친 것 같다.)

중간에 들렸던 그 바는 아르튬이라는 도시에 있는 곳이었다.
겉에서 보기엔 전혀 바 같지 않는 건물의 4층 정도를 올라가니 음악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몇몇 사람들이 소소하게 술을 마시는 그냥 일반 펍 느낌.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기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알고보니 그 바의 주인도 , 거기 있던 사람들 중 대부분도 파샤의 오랜 친구.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멀리서 온, 러시아어는 하나도 하지 못하는 낯선 이방인인 나를 둘러싸 앉으며 그렇게 밝게 웃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건네다니.
신기했다.
러시아 사람, 하면 떠올랐던 차갑고 무뚝뚝한 이미지와 편견이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자마자 사라지기 시작해 그 바에 도착해서는 완전히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함께 위스키를 마시고, 피자와 팝콘을 먹고 후카를 피우며 이 곳에 뭐하러 왔니, 왜 하필 많은 나라와 도시들  중에 이 곳 블라디보스톡이니, 한국은 러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 블랙핑크라는 가수를 좋아하니(이 전엔 존재자체도 몰랐었다.), 한국사람들은 음악에 재능이 뛰어난 것 같은데 너도 기타같은 것을 칠 수 있니, 북한과 너네 나라의 사이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은데 쇼맨십이니 진짜 현실로 되어가고 있는 일이니,  등등을 처음보는 이방인에게 러시아 친구들은 기자회견하듯 쉴새없이 물어봤다.

새벽 세네시가 되어가는데도 계속 문을 열고 어디선가 등장하는 러시아사람들.

 잠깐만 있다 간다는 게 아침 6시가 되어갔다. 이 시간까지 깨어 노는 건 정말 오랜만이기도 하고 출국일날 비행기를 타느라 긴장되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려 난 이만 가야겠다. 너넨 피곤하지 않아? 언제 자려고? 하니,
러시아인들은 토요일 밤엔 아침 10시에 자! 라고.

다행히공항픽업을 와준 선비같은 느낌의 제냐와 나, 파샤는 이만 퇴장하였다.
해뜨기 전에!!

그리고 숙소 체크인 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져 나는 파샤네 가족 집에서 하루를 신세지게 되었다.

 파샤의 가족들을 보니 그의 따뜻한 마음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고마운 분들.

추운 러시아에서 따뜻한 정을 많이 느끼고 간다.

러시아 사람들이 자주 먹는 가정식,
팬케이크와 양배추 수프, 청어 절임, 튀김, 으깬 감자. 피클.



여행 첫날부터 전혀 예상치 못하는 사람을 만나고 재미있는 소중한 추억들도 남기고.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복은 정말 많은 나.
나 역시 베풀며 살아야겠다ㅡ는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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