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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대장 김창수- 역사왜곡? 치하포사건은 본질이 아니다.

by Boribori:3 2017. 10. 29.

영화를 보러 가기 전 평점이나 리뷰를 봤었는데, 악플들이 대다수여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줄거리가 흥미롭기도 했고,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독립운동가 김구를 다룬 영화를 봐줘야 할 것 같아서 보러 갔다.

배우들의 연기도 엉망이고 역사 왜곡이다, 역사 미화다, 이런 수많은 리뷰, 댓글들의 말과는 달리 나는 정말 영화관을 나오면서 눈물을 너무 많이흘려 눈이 부을 정도로 감명깊게 본 영화였다. 역시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해서 판단해야지 남의 말만 듣고 색안경을 끼고 판단해버리는 건 아니라고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꼭 알아야 할, 100년도 넘은 조선시대의 아픈 역사를 다루는데, 100년 전의 일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그리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킬링타임용 심심풀이용 영화말고 이런 영화들이 좀 흥행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상영관도 별로 없고 (cgv는 아예 상영을 안하더라) 상영하는 곳도 하루에 2~3개 정도밖에 스크린을 띄우지 않는다.

 

아무튼 정말 괜찮은 영환데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리뷰를 쓴다.

 

 

 

#줄거리

백범 김구의 20대 초반 청년시절을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김구의 개명 전 이름은 김창수였다.)

김창수는 1896년, 일본인을 살해했다는 죄로 투옥되는데, 같은 감옥 내, 열악한 환경과 처우로 고통받는 같은 조선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 사이에서 진정한 대장이 되어간다는 이야기.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위대한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성장통을 담으며

 뜨거운 의지와 정의감으로 불타오르지만 리더십있는 지도자로서는 많이 부족한, 김구의 젊었을 적 청년 시절을 보여준다. 

 

 

 

#영화 배경, 치하포 사건.

 

1895년 을미년. 조선의 명성황후가 일본놈에게 살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다.

그리고 1년 후, 1896년 3월 9일. 청년 김창수(당시 20세)는 황해도 치하포의 한 여관에서 쓰치다라는 일본사람을 살해한다.

 

김창수는 황해도 출신이라면서 어눌한 서울말투를 썼으며 두루마기를 입고 단발을 한 그를 수상하게 생각했는데 거기에 두루마기 속에 칼까지 숨겨 차고 있는 것을 보며 그를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 낭인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행여 낭인이 아니더라도 칼을 차고 조선인인 척 숨어다니는 일본놈이라면 죽여 없애버림으로써 국모(명성황후)시해의 한을 조금이라도 씻어내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김창수는 쓰치다를 향해 달려들고, 몸싸움 끝에 그를 살해한다. 이후 그의 소지품을 확인해보니 그의 신분은 일본 육군 중위였다.

김창수는 그 자리에서  '國母報讐(국모를 죽인 원수를 갚고자 함)'이라는 포고문을 써 이 사건을 알리라고 하며 그곳을 떠난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일본 순사들은 조선 관리들에게 그를 압송하라 하고, 그는 곧 살인 강도 혐의로 체포되어 해주로 압송되고 심문을 받는다. 그러나 김창수는 쓰치다 살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었고, 얼마 안 있어 외국인 관련 사건을 재판하는 인천감리영으로 이감된다.

 

김창수는 재판을 받으며 자신은 죄가 없다고, 국모를 죽인 왜놈에게 복수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돌아온 건 사형선고였다.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일본 상인을 죽였다고 하면서.

 

 

 

#쓰치다는 정말 무고한 일본 상인이었을까

 

김창수는 국모시해의 복수를 하고자 일본군으로 의심되었던 쓰치다를 죽였다. 그리고 그가 실제로 일본의 육군 중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쓰치다가 육군중위라는 것은 김구 자신이 쓴 백범일지에만 기록되어 있었지, 이외 어떤 문서에도 그가 육군 중위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공사관의 기록에는 쓰치다가 그저 일본 상인이라는 내용만이 있었다.

 

아직까지 김창수가 시해범을 죽인 것인지, 무고한 민간인을 죽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일제시대 때의 공사관 기록을 믿을 수 있을까? 백범일지는 믿지 않으면서?

 

백범일지와 공사관 기록, 둘 다 작성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기록물이다.

백범일지에도 오류가 많아, 객관성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일본측 기록의 객관성도 믿기 어렵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1. 처음부터 위인이었던 사람은 없다.

훗날 민족의 지도자가 된 백범김구 선생도 원래는 불타오르는 정의감과 투쟁의식뿐이었던 피끓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사진출처-위키백과)

 

그는 쓰치다를 죽이고 인천감옥으로 수감된 후에도 '나는 저 죄수들과는 다르다'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가올 수 없게 굳건한 마음의 벽을 쌓는다. 그러나 이후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배운다. 일제로부터 핍박받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선 혼자만의 영웅행세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각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

영화 제목은 백범김구가 아니고, 대장 '김창수'임에는 이유가 있다.

 

2. 사건의 본질

 

김창수는 왜인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을 당시 이렇게 말한다.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 자는 없는 게 이 나라다.'

조선시대 이야기이지만 현재의 우리나라와도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이후 사형 전까지 투옥되어 감옥생활을 하는 김창수.

 

수감생활동안 그는 함께 생활하는 죄수들에게 몰래 글을 가르치며 문맹이었던 그들의 눈을 밝게 만든다.

또한 그들은 수감생활 도중 인천과 서울을 잇는 경인선 철도의 부설공사현장에 투입되고 가혹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다.

 

 

이 영화를 두고, 악플들이 엄청 많았다. 치하포 사건에 대해서.

김구의 흑역사를 왜 굳이 영화화 하느냐, 김구는 민간인을 죽인 살인자이다, 역사 왜곡/미화 하지마라  등 등.

그런데 영화에서는 치하포 사건에 대해 김구가 죽인 사람은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 자객이다, 이렇게 단정짓지 않는다.

논란이 일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해선 김창수(김구)의 주장과 당시 일본인들의 주장을 대립하여 보여주면서 논란을 그대로 녹여서 보여준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존재하는 사료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추측일 뿐인데 존재하는 기록이살해한 사람이 쓴 자서전 백범일지와, 역사왜곡을 밥먹듯이 해댔던 당시 일제의 공문서밖에 없다면 이 중에 무엇을 믿을지, 이를 따지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건 일본이 조선의 왕비를 잔인하게 죽였다는 것. 그리고 그런 짓을 저지르고 나서도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를 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모르는 척 하였던 것이다.

 

(을미사변을 저지른 일본 주한공사 미우라와 그 일당들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범인은 조선사람 두명으로 지목되어 이들을 처형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그리고 비난을 무마시키기 위해  단발령 등 개혁정책을 시행하여 조선인들을 더욱 분노케 만든다. )

김창수가 아무 이유 없이 여관 주막에서 식사중이었던 일본인을 죽이려 했을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치하포사건에 관련한 기록물에 대한 논란은, 나는 어떤 자료를 믿어야할 지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아무 이유없이 치기로 사람을 죽인 비판받아 마땅할 살인자인지, 아니면 정말 명성황후시해에 대한 복수로, 변장한 일본군을 죽인 건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은 국모 명성황후가 왜놈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하였는데 국가는 오히려 왜놈들에게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거기다 왜놈들은 아주 소중히 여겨왔던 자신들의 근본이자 효의 상징인 상투마저 자르라하니, 온 백성이 엄청난 분노와 치욕에 부글부글 끓고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을 죽였다'라는 팩트 하나로 의인을 살인자, 테러리스트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우리가 주목하고 기억해야 할 건 일제가 그러한 만행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뻔뻔스럽게 웃고 다니는 오만방자함과 치욕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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