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
이상했다. 쎄한 느낌이 들었다.
아닐거야, 아니겠지.
발걸음을 돌려 옆집으로 향했다.
가까워질수록 더욱 이상하게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머리는 얼른 가보라고 별일 없을 것이라 했지만 이상하게 느낌은 아니었다.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옆집 개가 누워있었다.
자신의 집 옆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왜 가만히 있는거지. 왜.
날 보면 그렇게 발발거리고 관심좀 가져달라 끼잉끼잉 칭얼거리며 난리부르스를 췄던 강아지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다.
미동도 않는다.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있었다.
따뜻하고 말랑거리던 발바닥은 차갑게 굳어 딱딱했고 움직여지지 않았다.
싸늘한 주검.
왜 좀 더 놀아주지 못했을까.
왜 요 근래들어 가보지 않았을까. 물이랑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언젠간부터 습관처럼 퇴근 후에 하루에 한 번씩 옆집 마당에 들러 개의 안부를 살피곤 했는데 -
화랑이 간식 챙겨주러 갈 때 까미 것까지 같이 챙겨주곤 했는데 -
최근엔 날씨가 너무 더워- 그래봤자 핑계에 불과하지만. 까미를 보러가지 않았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까미의 주인은 오후에 나가 새벽 늦은 시간에 돌아온다.
그런데 태양이 지글지글 모든 생명체를 구워 먹으려는 것 같이 작열했던 오늘
죽은 까미 근처, 물그릇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 뒤집어져 있는 밥그릇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용기는 물기 하나 없이 마른지 오래되어 보였다.
더운데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가슴이 미어졌다.
자기 집 옆에 나뭇잎이 드리우는 작은 그늘이 있는 공간에서 까미는 죽어갔다. 눈도 감지 못한 채로.
늘 사람의 손길과 관심에 굶주려 있었던 까미.
검은색 미니푸들로, 우리 토리랑 같은 종이라 더 눈길이 갔던 옆집 까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바보같은 눈물은 멈추지 않는데 이제와서 무슨 소용인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것도.
이상하고 쎄한 느낌이 들었던 건,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라고 - 나 이렇게 외롭고 힘들었다고 불렀던 까미의 부름이었을까?
미안해. 미안해 까미야
다음 생엔 꼭 , 좋은 주인 만나서 사랑 많이받고 행복해야 돼.
이미 떠나버린 이에게 잘해주지 못했다고 땅을 치며 후회해도 변하는 건 없다.
다시 한번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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