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이 많은 밤과 새벽.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개인적 생각

by Boribori:3 2018. 6. 13.

탈코르셋 운동으로 인터넷이 시끄럽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감자인 탈코르셋 운동의 '코르셋'은 보정용 속옷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이것을 하면 '여성스럽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즉, 화장, 긴 속눈썹, 렌즈, 하이힐 등을 거부하는 운동이다.

 

(코르셋은 여성의 몸매를 부각하기 위해 상반신을 꽉 조이는 몸매 보정용 속옷으로 수백년 전부터 여성들의 허리를 조여왔다.

좀 더 아름다워 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동안 사회에서 여성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한 외적, 미적 기준의 압박에서 벗어나자는 의미에서.

 

탈코르셋 운동의 이런 의미, 별로 나쁠 것이 없어보이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이 운동이 멍청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못생긴 여자들의 자기 위안이라며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걸까. 

 이 운동에 동의하는 사람은 하면 되고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되는 것을.

 

.

.

나도 대한민국 사회의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낀 점을 써 본다.

 

나는 사실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달랐다.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다는 중고등학교 청소년 시절에도 내 외모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내겐 편한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펑퍼짐한 교복,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눈이 작아보이는 두꺼운 안경을 늘 쓰고 다녔다.

선크림조차 귀찮아서 잘 바르지 않았었다.

그 때 같은 또래의 여자인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는 반대였다.

 바르면 얼굴이 하얘지는 미백화장품, 그리고 입술은 앵두처럼 반짝거리는 틴트, 립글로즈를 늘 가방에 넣고 다녔으며 가슴은 커보이고 허리는 가늘어보이게 교복 상의를 줄였으며 치마는 엉덩이 라인이 보기좋게 보일 만큼 짧고 타이트하게 만들고 싶어했다.

내 눈에도 나처럼 하고 다니는 것보다 그게 예뻐보이긴 했다, 그러나 편한 것을 추구하는 나는 내가 직접 하고싶진 않았다.

그래도 그 때는 교복입는 학생이었을 적이라 주변에선 친구들 빼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들, 부모님들은 학생 땐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주변 또래 남자애들은 내 미백크림을 바르지 않은 피부가 까무잡잡하다고 놀렸으며 여자애들은 교복 좀 줄여야하지 않겠느냐고 부추겼다.  

고등학교 땐 공부하느라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했고 왕성한 식욕 덕에 열심히 먹어서 살이 쪘었다.

그러니 여자애 팔뚝, 허벅지가 맞느냐고 놀리는 남자애들도 있었고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대로 가녀린 체구의 tv속 여자 아이돌들을 기숙사 벽에 붙여 놓으며 밥도 굶어가며 다이어트를 했다.

 

사실 나도 그런 주변 시선들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고

나도 저렇게 하고 다녀야되나 ? 하고 생각도 해보긴 했으나

딱히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지도 않고 귀찮음이 더 커서 마이웨이 프리스타일로 다니곤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성인이 되고나서도 난 그냥 내 스타일대로 살았다.

가끔 꾸미고 싶은 날엔 렌즈도 끼고 화장도 하고 치마도 입고 했으나 대부분의 시간은 선크림만 바르고 편한 티셔츠, 바지를 입었다.

가장 싫어했던 건 구두. 특히 발볼이 넓은 나는 구두를 신으면 발이 너무 아파 오래 걷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자기가 꾸미고 싶음 꾸미는 거고 말면 마는 거지 싶은 주의인 나에게도 주변 사람들의 오지랖은 꽤 있었다.

-여자애가 왜 꾸미는 걸 싫어하지? (화장 좀 하고 다녀라)

- 너는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어 (엄마가 종종 내게.)

-너는 코가 조금만 더 높으면 예쁠 것 같아. (코 수술 권유)

-여자는 크리스마스야, 나이 25를 전후로 값어치가 떨어지지, 조금이라도 어릴 때 남자 많이 만나봐!

- 오 오늘은 웬일로 여성스러운 옷을 입었대? 이제야 좀 여자같네 평상시에도 그러고 다녀라.

- ㅋㅋㅋㅋㅋ누나 오늘 쌩얼이네요 늦잠잤어요? (자기도 화장 안하고 쌩얼로 다니는 남자애가.)

 

이런 말들을 생각해보면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에게 들었던 말이다.

외모만 해도 이 정도지, 행동, 말투, 취미 이런 것에까지 성차별적 발언들을 생각해 보면 정말 끝이 없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처럼 자기 생각이 강하지 않은, 나보다 다수 또래의 의견이 중요한 보통의 청소년기 친구들은

참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겠구나 싶고.

자기 존중감이 없는,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에겐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올 수 있겠구나 싶다.

 

꾸미고 말고는 사실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지 남이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꾸미는 게 즐겁고 신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내 동생들처럼.)

나처럼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 사람들도 있다.

 

남이 어떻게 보는지 역시 신경이 쓰이면 관리하면 되고, 남들 의견 별로 상관없고 내가 하고싶은대로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세상엔 화려한 붉은 잎을 자랑하는 빨간 장미꽃도,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소나무도, 오동통한 선인장도,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결실을 맺는 감자와 고구마도 있고 이들은 모두 제각각의 매력과 멋이 있다.

장미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길가의 민들레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듯이 취향도 제각각이다.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것도 당연하다.

 

자신의 생각이 다수의 사람들과 같다고 소수의 생각은 부정하고 매도하려는 것은 분명 옳지 못한 일이다.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그려낸 기준'대로 외모를 잘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 외모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에 모든 관심이 쏠려있는 사람도 있다.

 

이를 이성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여우짓을 한다느니,

다수가 그런다고 여자는 ~ 남자는 ~하며 이를 일반화시킨다느니,

쟤는 너무 뚱뚱하다고 자기관리 안한다고 등뒤에서 비난하느니,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비겁한 것 같다.

 

무엇을 하고 말고는 - 개인의 선택할 일이다.

설리가 노브라인 채로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고 욕하는 사람들, 남이사 신경 껐으면.

 

탈코르셋 운동하는 여자들은 화장해도 못생겨서 이미 포기한 사람들이라느니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그냥 지능이 좀, 아니 매우 낮은 듯 싶고

 성별 관계없이 자기관리가 중요한 시댄데, 하고 욕하는 사람들은 이 운동의 요지를 이해 못한 것 같다.

이 운동의 취지는 외모우선주의 사회의 편견을 깨고, 그동안의 강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존중하자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인권은 아주 오랜시간, 엄청 낮았었다.

지금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남성에 비해 차별적 요소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자존감과 열등감으로 스트레스 받아왔던 여성들이, 오랜 기간 쌓여왔던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과 암묵적 강요에서 벗어나고자 -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

하고싶으면 그냥 혼자 하면 되지 왜 이렇게 시끄럽게 sns에 인증하고 어쩌고 하냐는 사람들도 있던데,

'함께' 변하자는 것이다. 그동안의 편견에서.

사회적 인식은, 많은 사람들의 행동변화에서 조금씩 바뀌는 것이니까.

 

그녀들이 자신들을 억압해왔던 '코르셋들'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을 응원하고 축하한다.

그런데 '코르셋'이 진짜 좋아서 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도 탈코르셋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자신들이 욕하는 '억압하는 사회' 와 다를 바 없다.

 

우리 모두는 다르다. 생긴 것도 생각하는 것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다름을 인정해야지, 너도 나처럼 생각해야 해!

하고 강요하는 것은 멍청한 짓.

무엇을 하든 남에게 잘 보이기위해서, 남들이 다 하니까 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좋아서, 내가 행복해서 하자. 한번뿐인 인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