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레이디버드(lady bird), 둥지를 떠나고 싶은 작은 새.

by Boribori:3 2018. 6. 7.

부모와 자식.

가장 오랜시간을 함께 해오고 자식이 독립하여 나가 살기 전까진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기에,

가장 많이 부딪치고 간섭이 많을 수밖에 없는 관계.

 

어릴 적엔 부모밖에 몰랐던, 잠시라도 부모가 곁에 없으면 불안해하며 울곤 했던 아이는 빠르게 자라서,

사춘기가 오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독립성이 자라난다.

그러면서 아이는 부모-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의 세상에 관심을 가진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먼저 세상을 살아보고 많은 경험을 해온 어른으로서,

그런 아이가 걱정스럽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이 모든 게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이의 행동을 자신의 생각과 기준에 맞게 조종하려 든다.

아이는 그런 부모를 이해할 수 없고, 서로는 끝없는 간섭과, 반항을 되풀이한다.

.

.

 

 

영화 속 주인공 레이디버드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10대 후반의 소녀이다.

레이디버드는 크리스틴이라는 소녀가 자기 자신을 칭하는 별명이다.

 크리스틴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길 싫어하고, 레이디버드라 불리길 원한다.

(왜 크리스틴이 자신의 별명을 하필 레이디버드(lady bird)라고 지었는지 이유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추측해보자면, 자신은 아이가 아닌 다 큰 숙녀 아가씨(lady)이며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새(bird)가 되고 싶다는 뜻 아닐까. )

 

레이디버드는 크리스틴이라는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고있는 집, 다니는 학교, 자신이 사는 마을(세크라멘토)도 싫어한다.

왜 자신의 부모님은 남들 부모님처럼 부유하지 못해 별로 비싸지도 않은 물건도 맘대로 사주지 않는지 불만이다.

답답하고 따분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해, 대학은 꼭 - 뉴욕이라는 화려한 대도시에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나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레이디버드의 엄마 매리언은 그런 딸이 못마땅하다.

그녀는 자기 방 청소도 잘 하지 않는, 굳이 집 근처 괜찮은 학교도 있는데 멀리까지 가서(돈만 더 들텐데) 학교를 다닌다는 딸이 한심스럽다.

그녀는 병원에서 2교대로 일하는 워킹맘으로, 하루하루가 치열하다. 게다가 남편은 실직.

자신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데, 학비가 비싼 곳으로 가려는 딸. 제발 철 좀 들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뚜렷한 꿈이 없는 딸을 보고 잔소리를 한다.

"엄마: I want you to be the very best version of yourself that you can be.

 (나는 네가 니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 되길 바라.)

레이디버드: What if this is the best version?

 (지금 이게 최선이라면요?)"

 

이 두 모녀는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달라, 계속 부딪치게 되고-

레이디버드는 남자친구와의 어이없는 첫 섹스, 그리고 이별, 원하는 대학 지원서들의 광탈, 단짝친구와의 멀어짐 등등으로 인해 이미 충분히 힘들다. 그런데 엄마마저 왜 자신을 저리 닦달하는지, 빨리 이 곳을 떠나버리고 싶다.

 

그 와중에 레이디버드는 카일이란 남자애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미성년자이면서 담배를 피우며 그럴듯해보이는 책을 읽고 있는 카일.

그가 하는 말들이 모두 멋있고 어른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카일이 하는 말들에 아는 척, 동의하는 척 하며- 카일과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카일은 물론 , 그의 친구들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진짜 자신을 숨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부끄러워 잘 사는 동네에 있다고 속이기까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내 본모습이 아닌 잔뜩 꾸미고 치장한 모습을 연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기 힘들다. 

오래간다고 해도, 내 본모습이 아니기에 그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고 그래서 점점 지쳐갈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 진짜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진짜 친구이며 애인이 아닐까.

 

 

레이디버드도 곧 이를 깨닫는다.

인상깊었던 장면은 레이디버드가 카일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프롬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가는 장면.

그녀는 프롬(졸업 파티)에 남자친구와 가는 것이 예전부터 로망이었다. 그래서 기대를 품고 잔뜩 꾸미고 나갔는데,

카일은 무심한 표정으로 오늘은 프롬같은 파티에 갈 Feel이 아니라고 툭 내뱉고 카일 친구들은 그래 그냥 누구네 집에나 가서 술이나 마시자~ 하고 있다. 레이디버드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어보인다.

평상시의 그녀였다면, 그래 나도 사실 가고싶지 않았어. 하고 또 자기 감정을 숨겼을 것이다.

그런데 . 거기서 그녀는 처음으로 그녀의 '껍데기'친구들에게 자신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다.

여태까진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포장하고 꾸며서 말했었는데. 그리고 차에서 내려, 원래 단짝이었던 친구에게로 달려간다.

 

결국 레이디버드는 자신이 하고싶은 바를 이룬다. 뉴욕에 있는 대학에 합격을 한 것.

그녀는 드디어 고향 세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으로, 날아간다.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서.

 

그러나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다.

성인이 되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남자와 관계도 갖는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그리고 곧 공허함이 찾아온다.

그토록 자신이 꿈꿔왔던 뉴욕으로 날아간 레이디버드는, 그 뉴욕에서 레이디버드라는 가명에서 벗어나 크리스틴이라는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인정한다.

사람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떠나보면 곧 깨닫는다.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가족은 , 부모님은 내가 잘못을, 실수를 저질러도 언제나 내 편이다.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엄마와 딸 크리스틴을 보면서 ,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나도 많이 그랬었고 지금도 그러니까.

 

사랑하는 소중한 존재들을 다시금 생각하게끔 만드는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