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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자

30년전 오늘, 6월 민주항쟁의 불꽃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by Boribori:3 2017. 1. 14.

1월 14일.  오늘로부터 30년전, 1987년 1월 14일은  박종철 열사(시민운동가)가 경찰들의 끔찍한 고문으로 인해 사망한 날


오늘 서울 광화문광장, 그가 숨졌던 곳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그리고 그의 고향 부산, 그의 묘소가 있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에서는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사진출처: 한겨레, 박종철이 숨졌던, 대공분실 509호. 여기서 물고문을 당했었다.)




          (사진출처:경향신문, 부산 서면에서 열린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었던 부모님의 찢겨진 마음은..)


1965년 4월 1일에 태어난 그나 1987년에 사망 이라니.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왜. 


그의 사망 사인은 교통사고도, 병사도 아닌 '고문'이었다.


서울대 언어학과 회장이었던 그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공안당국에 붙잡혀 전기고문, 물고문, 심한 폭행을 받다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치안본부 조사실에서 경찰들에게. 이는 명백한 살인이었다.


그리고 전두환 독재 정권은 이 학생의 죽음을 은폐하려고 하고, 이는 불씨가 되어, '6월 민주항쟁'을 촉발하게 되었다.

(박종철 열사가 사망했던 당시는, 군사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군부독재를 하며 활개쳤던 제5공화국 시대였다. 전두환은 온갖 부정부패, 민주화운동탄압, 독재, 인권유린 등으로 국민들의 비판과 원성을 들었었다. ) 


6월 민주항쟁 관련 참고링크: http://boriborikim.tistory.com/80





"탁 치니 억"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박종철이 죽은 이유를 말도 안되게 발표하였는데. 

->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의 친구(박종운)의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 라고.


   (사진출처: 한겨레,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수사결과 발표를 하고 있음)



그래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의 죽음을 변명한 부패한 그들 군사정권을 비꼬는 유행어로 한동안 성행하였다고 한다. 

사진 속의 강민창은 결국 구속되었다.




박종철이 고문으로 숨진 후, 이를 은폐하려던 경찰들은 바로 시신을 불태워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경찰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친 용기있고 정의로운 몇 몇 사람들(최환 검사:사체보존명령을 내림, 황적준 박사:국과수 부검의. 등)의 노력에 의하여 그의 시신은 부검되어, 사망원인을 정확히 밝힐 수 있게 되었다. 


관련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11248.html



    

그의 죽음으로 인해 타올랐던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실시(6.29선언), 독재정치의 종결로, 국민들을 결코 억눌러서는,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수 있었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상상하지도 못할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 죽임을 당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수많은 이들의 피땀어린 희생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저절로 얻게된 지금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늘도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모제에 이어, 그가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또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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