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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한글날, 빨간날로 되기까지.

by Boribori:3 2020. 10. 9.

 

우리 부모님은 외식을 하러 종종 나가신다. 

굴비정식이나 생선회, 메기탕 같은- 집에선 요리해먹기 어렵거나 번거로운 해산물 종류 음식을 즐기시는데

가는 식당은 거의 같다. 한번 가고 맛있어서 꽂히는 곳을 다음번에도 주구장창 방문하시기 때문에 그 식당의 사장님은 물론 직원분들까지 반갑게 인사하는 단골손님.

대신 자식들과 함께 외식하는 날은 젊은층들이 즐겨 가는 식당이나 까페에 가신다.

얼마 전엔 아빠와 닭고기가 아주 풍부하게 들어간 햄버거로 유명한 맘스터치라는 곳엘 갔다.

전에 몇번 이곳 버거를 포장해왔었는데 그때 먹었던 버거가 무엇이냐며, 메뉴판을 보며 물어보셨다.

'싸이버거'랑 '화이트갈릭버거' 라고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으셨다. (우리 부모님은 영어를 모르신다. 땡큐, 오케이, 굿바이 정도만 아시는 정도.)

'싸이=허벅지=닭다리살,  갈릭=마늘양념'이라고 대충 설명드리니

웃으시며 요즘엔 식당 간판은 둘째치고 메뉴판에도 모르는 외국어로 되어있는 이름이 많아서 음식을 고르기도 힘들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치킨도 고르시던 아빠는 또 물어보셨다 . "'어니언치즈뿌치'는 뭐니?" 

ㅜㅜ...

 

할머니집 화장실에 고모가 사다둔 샴푸와 린스가 있는데 죄다 영어로 써져있어서, 할머니가 샴푸통에 '샴푸' '린스'하고 엄청 큰 글씨로 삐뚤빼뚤 써놓으셨던 것도 생각난다.

울집 욕실 샴푸, 린스 등 세면도구들을 보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생각없이 넘어갔던 것들이 영어를 모르는 사람 시각에서 보면 참 답답하겠구나, 싶었다.

 여긴 분명 한국인데, 한국인들이 하는 매장의 간판, 품목들이 거의 다 외국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옮겨논 것들 투성이.

 

#한글날, 다시 빨간날이 되기까지.

생각해보면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다시 지정된 것도 몇년 되지 않았다.

- 1446년 9월(세종 28년), '훈민정음' 반포

-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음력 9월 29일 '가갸날'로 선포. (조선어연구회/신민회 공동주최)

- 광복 직후였던 1945년, 정부. 한글날을 10월 9일로 지정

- 1946년 10월 9일,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 (국경일은 아니었음)

- 1990년 11월 5일, 한글날 공휴일에서 제외.('공휴일이 많아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

 - 이후, 여러 단체나 개인들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해달라고 청원 , 국회의원들도 여러 회의를 거치며 노력.

자료-국회기록보존소

- 2005년 12월 9일, 한글날 국경일 승격 의결. (그러나 공휴일은 아니었음)

-2012년, 제19대 국회에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

자료-국회기록보존소

 

 

여러 사람들의 갖은 노력으로 국경일, 그리고 다시 빨간날(법정공휴일)이 될 수 있었던 한글날.

덕분에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대신 늦잠자고 일어나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우러러보며 잠옷바람에 맨발로 마당에 나가 햇살을 즐기는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울집 감나무. 가을이다!!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내면서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긴다.

지금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쓰고 있는 글자가 알파벳도, 히라가나도 아닌 우리나라 한글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스페인에 지배당한 중남미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스페인어로 생각하고 말하게 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일본어만 쓰게될 뻔 했는데 한국어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아직도 우리 할머니는 몇몇 물건들을 보면 일본말로 부르셔서 내가 못알아 들을 때가 종종 있다. )

해외여행에 가서 외국친구들과 놀다보면 정말, 나만의 비밀언어를 가진 기분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얼른 코로나시대가 끝나서 해외여행 가고프다 ㅜ.ㅜ

 

요즘엔 토익같은 영어시험 공부하느라 영어 문법, 맞춤법은 심지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보다 빠삭하게 잘 알면서

정작 한국어 맞춤법은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게 된다면, 내 아이에게만큼은 우리말의 소중함을 잘 알려주고 외국어보단 한국어를 먼저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친한 친구가, 생일선물 겸, 읽어보라고 보내준 택배가 때마침 어제 도착했다.

이번 연휴는 이 책을 읽으며 보내야지. 너무 완벽한 선물이잖아..

세상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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