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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케빈에 대하여: 모성애는 당연해야 하는 것인가.

by Boribori:3 2017. 5. 13.


충격적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무거운 주제를 담은 영화.

줄거리를 한줄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 행복하지 않은 엄마와 그런 엄마를 증오한 아들이 벌이는 행동들.

잔인한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여느 영화보다 충격적이고 멍-해지게 만드는 영화.     


이 영화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건 두가지였다. '악의 근원''모성애'.

부모와 자식간의, 아주 당연스럽게 생각되던 물보다 진한 피로 이어진 혈연관계에,

'어머니'하면 저절로 연상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에 , 이 영화는 낯선 질문을 던진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눈에 알 수 없는 분노가 가득 담긴 표정을 엄마에게만 지으며 엄마에게만 반항과, 고의적인 실수를 하는 케빈.

어린 아이가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이 조마조마한 존재였다.

이 작은 아이는 영화의 후반부에, 수십명을 무자비하게 죽여버린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짓는, 살인마가 된다.

악을 저지르는 악마는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악마였을지. 아니면, 환경적 요인(이를테면 부모의 사랑 결핍)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영어 제목은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화의 내용이, 이 포스터 하나에 다 담겨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아들, 전혀 즐거워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사이엔 금이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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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부터 계속 등장하는 붉은색.

보는 내내 불편하고 긴장하게 되는 색이었다.


뭉개진 토마토들, 붉은 페인트, 딸기잼.

그리고 케빈의 엄마가 계속, 차 유리와 집 바깥 창문, 벽에 묻은 붉은 페인트 같은 걸 지우려고 , 긁어내려고 하는 모습과

손에 묻어있는 그 붉은것들을 솔을 써서라도 남김없이 싹싹 없애려는 장면이 영화 초반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계속 나온다.


마지막에 케빈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자신의 아버지, 동생을 포함한 수십명의 생명을 앗아간 묻지마살인을 저지르는데

이 붉은색이 이 붉은결말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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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스페인 토마토축제를 즐기고 있는 주인공 에바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여행가 에바는 이 축제에서 남편을 만났고 어느날 임신을 하게 된다. 원치 않는 임신이었다.

10개월간 품었던 아이를 낳고나서도 전혀 즐거워보이지 않는 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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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자신이 낳은 아이니 최선을 다해 케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케빈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평범한 아이와는 달랐다. 

말을 할 줄 아는데도 말을 하지 않고, 배변을 가릴지 아는데도 일부러 가리지 못하는 척을 하고 엄마를 끊임없이 노려보고

괴롭힌다. 장난기 심한 보통 남자아이들의 철없는 장난이나 반항 같게 느껴지지 않았다.


악마같은 표정을 지우며 보란듯이 기저귀에 똥을 싸는 케빈, 그리고 에바가 새 기저귀로 갈아주자마자 또, 보란듯이 똥을 싸며 에바를 보며 냉소를 짓는 케빈.

 에바는, 자신의 아이지만 무섭고 소름끼치는 면이 있는 케빈에게 점점 지쳐가고 끝내 사랑하지 못한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에바는 하나도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괜찮은 척, 하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 같은 모성애가 강한 엄마가 아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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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케빈은 이를 느꼈을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어떤 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특히, 아이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우주이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케빈은 ,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함을 반항과 심술적인 행동들로 표현했고 이는 커갈수록 더해갔다. 그런데, 케빈이 그러한 행동을 할 때마다

엄마는 '왜그랬니'하고 묻지 않았다. 그저 케빈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들을 애써 웃어가며, 참는 표정으로 묵묵히 치웠다.

그리고 케빈의 악마같은 면모는 점점 커져가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기에 이른다. 

철저히 계획해서,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친구들 여럿을 몰살하고 아빠와 어린 동생까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그런데 케빈은 왜, 아빠와 동생까지 죽였으면서 엄마는 살려둔 것일까.

케빈에게 중요한 것은 엄마 뿐이었던 것.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이혼을 한다하고, 양육권은 아빠에게 넘어간 것 같고.

그래서 죽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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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에바는, 사랑하진 못했을지언정 케빈에게 최선을 다했다.  

끊임없이 악을 질러대며 우는 갓난아이 케빈을 어르고 달래며- 이후에도 주욱- 어머니라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어찌됐든 아이에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헀고 사랑하지 않음에도 자신이 낳은 생명을, 책임졌으니까.

사랑은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에바는 엄마이기 전에 감정을 가진 한 인간이다. 

 


모성애가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사실, 아이가 생기는 순간,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관계이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에게는 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의 선물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쩔수 없이 지고가야 할 짐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모성애, 부성애가 큰 사람들은 아이에게 온갖 애정과 관심을 듬뿍 주며 아이를 키우며 힘들 수 있는 시간들이 행복할 수 있겠지만 .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 '사랑'이 없기에 그 힘든 시간들이 훨씬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

다른 인간관계들은 자신이 싫으면, 끊어버릴 수 있지만 부모자식 관계는 평생 지울 수가 없다. 인연을 끊고 살더라도 어쨌든 이들은 생물학적으로 서로의 부모와 자식이 되는 거니까.

아마 그래서 우리는 자라가며 교과서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책에서, '바람직한 어머니의 사랑'을 배우고 접하였기 때문에 모성애라는 것은 당연히 있어야 되는 거라고 고정관념이 생겨버린 것일 수도 있다.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도 평생 자라며 그런걸 배우고 접했기 때문에 아 내가 이래선 안되지.. 하며 자기 자신을 다잡는 것일 수도. 

내 주위엔 결혼을 했음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 커플들이 몇 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했었다. 애들 자체를 싫어한다고.

반면, 내 동생은 근처 모르는 애들이 지나가도 너무 귀엽고 예쁘다며 엄마미소를 날린다. 그리고 결혼해서 현명한 엄마가 되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꿈꾸고 있다. 아이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사실 애들이 귀엽긴 한데 동생처럼 엄마미소 만발하게끔, 이쁘다고 오두방정 떨만큼 그렇게 좋지 않다. 그저 귀엽게 생겼네, 아 아이이구나, 할 정도.

이렇게 나랑 동생, 그리고 주변 지인들만 봐도 모성, 부성은 절대적이지 않은 것 같다. 아이를 실제 낳아보면 어떻게 변하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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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을 싫어하는 아이라도, 엄마이기 때문에 끝없이 인내하며 사랑해줘야 한다는 게 아마 이 세상의 일반적 관념인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에바도 아이를 사랑하지 않음에도 , 그리고 그 아이가 끝없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도 죄책감을 가지며 노력하며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겠지.

너무나도 큰 불행인 것 같다. 사랑하지 않으나 의무감 때문에 사랑하는 척 하는 것은.

이는 아이와 부모 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는 사랑하는 척, 하지 않고 그 관계를 쉽게 정리해버릴 수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자신이 보호해야 할 힘없는 아이라면.

...

영화 중반에 케빈이 에반에게 했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Just because you're used to something doesn't mean you like it. You're used to me." (단지 네가 무언가에 익숙한 게 너가 그걸 좋아한다는 건 아냐. 너는 그냥 나에게 익숙한거야.)


자신이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건,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아니, 동물들도 안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왜 제목이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인지 알 것 같다.

이 케빈이라는 악마같은 아이에 대해, 'WE'. "우리"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우리 전부 다가.

우리 모두는 이미 부모일 수도, 또는 이후 부모가 될 사람이기에. 

악의 근원은 인간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신만이 답을 아는 것일 지 몰라도

어쨌든 이 영화의 케빈은 아이와 엄마간의 금이 간 관계 속에서 삐딱하게 자란 아이이다. 정상적인,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 

그런 붉은 결말은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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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아이는 낳으면 안된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불행. 

사랑할 수 있는 아이를 낳고 행복하자, 아이도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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