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영화 가버나움 : 무책임한 부모를 고소한 12살 소년이야기

by Boribori:3 2022. 12. 18.

이번 주말 본 영화, 가버나움.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프고 무거웠고 보고난 후에도 여운이 많이 남아 많은 이들이 꼭 봤으면 하는 작품.

영화는 자인이라는 이름의 조그만한 아이가 법정에 서서, 판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작은 아이가 법정에 서 있는 이유는 자신의 부모님을 고소했기 때문이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 부모가 더 이상 애를 낳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애를 낳지 못하게 해주세요."

부모님이 자신을 태어나게 해서라고 한다.
도대체 이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
.
.

아이는 자신의 나이도 제대로 모른다. 부모가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고 아이의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2살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게 된 이유인, 이 작은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
.
자인의 부모는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의 자식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일을 시킨다. 약국을 돌며 마약성 진통제인 트라마돌을 구해오게 해 이를 이용해 장사를 시킨다. (소위 말하는 앵벌이) 돈때문에 자식들을 범죄에 총동원하는 부모들.

자인과 형제자매들.

12살정도 되어 보이는 자인이 첫째 아들로 보이며- 동생들은 너무 많아 도대체 자식이 정확히 몇명인지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학교도 보내지 않는다.

자인은 학교 대신 부모가 시키는 여러 일들과 어린 동생들을 돌봐주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자인 역시 근심 걱정 없이 원없이 뛰어놀아야 하는 어린아이임에도, 그는 이런 삶을 살아야하는 자신과 동생들의 처지에 항상 화가 나있는 표정이다.

그러던 어느날.
여동생 사하르가 초경을 시작하게 되는데. 학교도 다니지 않고 부모가 가르쳐준 것도 없으니 이게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그녀를-부모대신 겨우 1살 많은 자인이 챙겨준다.

생리를 시작했다는 것을 부모 포함- 어른들에게 들키면 너도 옆집 여자애처럼 돼지같은 아저씨에게 팔려가게 될 테니 꼭 비밀로 해야한다고 당부하고 훔친 생리대를 주면서- 패드를 버릴때도 집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라고 동생을 가르친다.

동생의 피묻는 팬티를 빨아주는 자인.
동생을 위해 생리대 훔치는 자인.


자인이 그렇게 지켜주고 싶었던 여동생 사하르는 약 11살 정도의 너무 어린 나이에 동네 아저씨에게 혼인을 빙자해 팔려간다. 어머니라는 사람은 동생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고 난리치는 자인을 폭행하며 가기 싫어하는 딸아이를- 소정의 값을 받고 보내버린다. 자식이 많은데 비해 벌이는 없으니, 먹을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처분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이것도 자식을 위한 일이라며 합리화하는 부모.(심히 당황스럽다)
.
.

여동생이 팔려가는 것을 막지 못한 자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집을 나온다. 갈 곳도, 먹을 것도 잘 곳도 없으니 일을 구하기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어린 자인은 라힐이라는 불법체류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어렵게 구한 위조 신분증을 통해 청소일을 하며 하루하루 먹고사는데 - 1~2살정도 돼보이는 어린 아들 요나스를 몰래 키우고 있다. 오갈곳 없는 자인이 본인과 아들의 신세와 비슷해 보며 안쓰러웠는지 그녀는 자인을 자신의 거주지로 들이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신 자신이 출근할때 요나스를 맡아달라고 한다.
과거, 부모 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케어했던 경험들로 자인은 요나스 육아를 시작한다. 자인은 아기를 정말 정성껏 돌본다.

그런데 어느날.. 라힐이 집에 돌아오지 않고, 먹을 것이 떨어진 자인은 이상함을 감지하고 요나스와 함께 라힐을 찾아 나선다.



자신도 한창 부모에게 사랑받고 살아야 할 어린 아이인 자인은, 혼자 살아남기에도 벅참에도- 자신보다 더 힘없고 나약한 요나스를 책임지며 끝까지 함께 데리고다닌다. 혈연조차 아닌 요나스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인의 모습이 그렇게 가슴아플 수 없었다.


어른보다 성숙해져버린 아이. 자신의 부모에게조차 받지 못한 사랑과 보호를 베풀려고 노력하는 방치된 아이.
보호받지 못한채 세상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지옥같은 삶을 경험하게 된다.
.



영화 후반부.
필요한 서류를 찾기 위해 부모가 사는 집을 잡시 들린 자인은,
여동생 사하르가 아이를 임신했고, 도중 하혈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12살도 안된 어린 애가 부모의 강요로 원치 않는 시집팔이를 당하여 그 남자의 애를 가진 채 사망한 것.
충격에 빠진 자인은 사하르의 남편을 칼로 찌르고 교도소에 간다.

그리고 교도소로 자인을 보러온 엄마라는 인간은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나도 딸을 잃은 엄마야.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돌려주신단다. ... 엄마 임신했어. 네게 동생이 생길거야. 딸이면 좋게어. 사하르(자인의 죽은 여동생이름)라고 하게. 네가 나올때 쯤이면 네 동생은 걷고 뛰고 할 수 있겠지."


"엄마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다신 여기 오지 마세요."

그렇게 자인은, 부모를 고소하게 된다.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은 채 아이만 계속 낳아서 고통만 안겨주는 부모를.
.
.
.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인생이 개똥 같아서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부모님이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못하게 해주세요."

추운 겨울날. 따뜻한 집 안에서 뜨끈한 코코아를 마시며 영화를 시청했는데. 부끄러웠다.
.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이 받아야 할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려 배고픔과 무더위.추위를 견뎌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미안했다.

영화 속 자인과 아이들의 삶을 보니, 불과 두달 전 다녀왔던 인도 뭄바이 거리 위 앵벌이를 하며 잡아끌던 아이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마음은 아프지만 회피하고 싶었던, 보고싶지 않은 현실에 불편했었던. 뭄바이- 정말 싫다고. 정말 오고싶지 않은 곳이라 느껴졌었던.
.
.

얼마나 많은 자인이 우리 현실에 살고있는가. 알고있지만, 알고싶지 않은 현실이다. 영화가 그려낸 현실. 그런데 현실은 더 참혹할 것 같다.

영화의 여운으로 인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 배우들 정보 등을 찾아봤는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영화 속 배경 자체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최하층 계급의 거주지라고 한다.
https://youtu.be/ChyTiRENNz4

더 충격적이었던 점은 영화 속 주인공들도 전문 배우가 아니었다는 것. 해당 역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실제 인물들을 길거리 캐스팅한 거라고 한다.

자인 역을 맡은 아이는 실제 베이루트에서 배달 일을 하던 시리아 출신 난민이고 심지어 이름도 자인. 자인 여동생 사하르 역의 하이타 아이잠도 베이루트 거리에서 껌을 팔던 소녀라고 한다. 라힐 역을 맡은 시프로우라는 여성도 실제 불법 체류자. 심지어 한살배기 요나스는 불법체류자의 딸로, 촬영도중 부모가 체포되어 감독이 직접 키우며 촬영했다고.
본인들이 겪었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연기'하며 난민들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고통을 전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영화화한 라바키 감독.

미디어의 힘으로 아이들과 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싶었다고 한다.

이런 선한 사람들이 있기에..그래도 이 세상이 살아갈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며 최소 내 주변 사람들에겐 책임감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드는 -
많은 것을 돌아보게 만드는 무거운 영화, 가버나움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