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이창준 검사, 죄인을 단죄할 권리

by Boribori:3 2018. 9. 25.

마지막까지 가슴 속을 찌르는 이창준 검사의 유서.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의 보통 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다.

19년.

검사로서 19년을 이 붕괴의 구멍이 바로 내 앞에서 무섭게 커가는 걸 지켜만 봤다.

 

설탕물밖에 먹은 게 없다는 할머니가 내 앞에 끌려온 적이 있다.

고물을 팔아 만든 3천 원이 전 재산인 사람을 절도죄로 구속한 날도 있다.

낮엔 그들을 구속하고 밤엔 밀실에 갔다.

그곳엔 말 몇 마디로 수천 억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난 그들이 법망에 걸리지 않게 지켜봤다.

그들을 지켜보지 않을 땐 정권마다 던져주는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받아 적고 이행했다.

 

우리 사회가 적당히 오염됐다면 난 외면했을 것이다.

모른 척할 정도로만 썩었더라면 내가 가진 걸 누리면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몸에서 삐걱소리가 난다.

더 이상 오래 묵은 책처럼 먼지만 먹고있을 순 없다.

이 가방 안에 든 건 전부 내가 갖고 도망치다 빼앗긴 것이 되어야 한다.

장인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의 유품이 아니라 끝까지 재벌 회장의 그늘 아래 호의호식한 충직한 개한테서 검찰이 뺏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강력한 물증으로서 효력과 신빙성이 부여된다.

 

부정부패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십, 수백의 목숨이다.

처음부터 칼을 뺐어야 했다.

첫 시작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조차 칼을 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시간도 아니요 , 돈도 아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사람의 피다.

수많은 사람의 피.

역사가 증명해 준다고 하고싶지만 피의 제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미 치유시기를 놓쳤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 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

 

 

.

.

.

한 문장 한 문장이, 이창준검사가 그동안 얼마나 후회와 자책을 해왔는지-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

그런데.

 자살이라는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투신 전에, 이창준은 황시목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갑을 차고 수형번호를 가슴에 달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겠지. 후배 검사들에게 추궁받으면서. ... 패잔병이 돼서 포로로 끌려 다니느냐, 전장에서 사라지느냐...'

수갑을 차고 수형번호를 가슴에 달고 후배들에게 추궁받으며 패잔병처럼 비참하게 사느니, 전장에서 싸우다 죽어버리는 게 명예롭다고 생각한 것 같다.

흠없는 인생을 살지 못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해서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부정부패가 법을 수호하는 검사로서 그렇게 견딜 수 없었다면-

죽음을 각오했던 그 마음으로, 재판장에 서서 끝까지 맞서 싸웠어야 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살인을 계획하고 자신의 목숨도 던져서 삶을 끝내버리는 게 아니라.

오명을 쓰더라도 끝까지 살아서, 자신의 고결한 신념을 책임지는 행동을 했었어야 했다.

 

그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황시목 검사가 대답한 말에 동감한다.

'괴물입니다.'

'죄인을 단죄할 권리가 본인 손에 있다고 착각한 시대가 만든 괴물.'

 

.

.

 

조승우와 유재명 배우님의 발견.

비밀의 숲.

한국드라마는 연애로 시작해 연애로 끝나서 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생각을 타파한 , 웰메이드 드라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