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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종의 기원(정유정)/ The Murderer Next Door(David M.Buss) : 절대 악, 살인에대해서.

by Boribori:3 2017. 2. 23.

종의 기원-

 

이처럼 몰입되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에 사로잡혀있었다.

 

정유정 작가의   장면묘사, 상황, 그리고 심리묘사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인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였다.

 

작가가 책을 쓰며 상상한 장면은 그대로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스펀지처럼.

 

 

 

책의 표지를 , 읽기 전에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넘겼었는데 읽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아니,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다른 것에선 도통 흥미를 느낄 수 없엇던 어린 유진은,

물비린내를 좋아하고 물 속에서 안정감을 얻는 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수영'에 집착하게 되고 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유진이, 어머니와 이모의 제재에 의해 수영장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게 되고

물 속에 가라앉아 있던 유진의 '악'은 세상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수영장 밖(세상)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유진의 '악'. 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줄거리]

이 책은, 한유진이라는, 내 또래나이의 청년의 시각을 통해 그려진다.

 

간질을 앓는 주인공 유진이 어느날 아침 자신의 방, 침대에서 피범벅이 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니, 자신의 어머니가 죽어있었다. 아니, '살해'당해 있었다.

그러나 유진은 - 곧, 이 어머니를 살해한게,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혼란스러워한다.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므로.

기억에 없었던 조각들을, 죽은 어머니의 일기장을 통해 끼워 맞추고 되살리며-

그는 '살인마'가 되어간다.

.

.

.

 

유진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조용한. 수영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니 '무해한' 학생이었다.

 

평범하다는 표현에서 '무해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은 이유는,

이 '평범하다'는 건 몇 몇 다른 사람들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진은 어린 시절부터 쪼그마한 남자아이가 피울만한 말썽같은 건 피우지 않고

다른 친구들을 사겨 함께 어울리는 것 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함- 과 고독을 즐기는 유진을 또래아이들은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정신과 의사이자 유진의 이모였던 혜원은

그를 잠재적 '악의 씨앗'으로 보았고 '싸이코패스'를 뛰어넘는 '프레데터'라고 했다.

 

이후 유진의 어머니 역시-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고만 여겼던 아들의 모든 행동들에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이 의심은 날로 커져 죽은 남편과 큰아들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고-

유진 때문이라고 . 생각하게 된다.

아들이 자라 26살의 다 큰 성인이 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비좁은 그물망에 가둔다.

26살의 유진은 외박은커녕- 밤 9시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가 '간질' 증상을 앓는다고 걱정하면서.

 

책을 읽으며 나도 유진처럼 참 혼란스러웠다.

 

다른사람들의 슬픔, 기쁨, 외로움. 이런 감정에- 어릴적부터 잘 공감하지 못하는 그가-

무슨 일을 해도 희열을 느끼지 못했던 그가-

처음으로 짜릿함을 느끼고 자신의 심장이 뛰게 만드는 것은

 '겁먹은 존재를 쫓아가며 그것이 더 두려워 하는 것을 보는 것' 이라는 것을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깨닫는 주인공을 보면서-

 

인간이 결코 저질러서 안되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인 '살인'이라는 악을 실행하며-

죄책감은 커녕 이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는 많은 연쇄살인마들이 생각났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아님 선천적인가.

이러한 악함은 태어날 때 유전자에서부터 새겨져 있어

결코 막지 못할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

.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정유정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진화심리학자,

  David M. Buss 작가의  책(이웃집 살인마)에 나온 몇 문장을 인용하며

악은, 태초부터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가의 책도 한 번 읽어보았다.

"The Murderer Next Door."

 

 

이 책에선 '살인본능'은 진짜 '살인자'가 되어버린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고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으나  살인을 '들켰을 경우'에 치뤄야할 죗값이

무섭기에 살인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진화적으로 살인은 사실 순수 악이 아니라 주위의 경쟁자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생산적인 생존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책을 썼다.

 

<인상적인 구절>

15p “Most killers, in a nutshell, are not crazy. They kill for specific reasons, such as lust, greed, envy, fear, revenge, status, and reputation, or to get rid of someone who they perceive is inflicting costs on them. They are like you. They are like me.”

(간단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살인자들은 미치지 않았다. 그들은 특정한 이유(탐욕, 시기, 두려움, 복수, 명성 등)때문에 죽인다. 그들은 당신이나 나나 다를 바 없다. )

23p “Murder increases dramatically as males enter the years of reproductive competition.”

(살인은 남성들이 번식 경쟁을 시작하는 시기에 극적으로 증가한다.)

201p “In the modern world, killing is clearly not a successful strategy for getting ahead. But for most of our evolutionary history, there were no police forces, judicial systems, or jails. ...and in that context, murder under some circumstances would have been a successful way of gaining and maintaining position in status hierarchies.”

(현대 사회에서 살인은 앞서가기 위해 성공적인 전략수단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진화의 역사를 보면 경찰, 법. 감옥 같은 건 없었었다. ... 이러한 환경에서 살인은 높은 자리를 얻고/ 유지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230p “Killing is more common in cultures lacking television, movies, and violent video games.”

(살인은 텔레베전, 영화, 폭력적인 게임 등 매체가 부족한 나라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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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을 읽으며 그저 '절대 해서는 안될 일, 용서받지 못할 나쁜 일'으로 치부하며 끔찍하게만 생각했던

'살인'과 이를 실제로 저지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악은 어떻게 존재하고 점화되는가".

이 책의 뒷면에 적혀있는 문구이다.

그렇다면 이 '악'은 무엇인가.

 

종의 기원에서의 '악'은 '살인'으로 상징되고 있고 데이빗의 the murderer next door에서는

'살인'은 진화학적으로 성공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 했다.

 

사람만이,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고 '악'을 행한 자를 죄인이라 치부하고 이를 재판하여

어떻게 할 지 결정한다. 때론 사형으로. 가장 큰 벌이 사형인걸 보면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것을 가장 인간이 두려워하긴 하나보다.

 

또 이 책은 이전에 재밌게 봤던 ,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시간이 부족하단건 핑계겠지만.)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미국드라마 '덱스터(dexter)'를 떠오르게 했다.

 

자신의 살인에 대한 엄청난 열망을 ,

자신과 사실 같을 지도 모르는 죽음이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희대의 살인마들. 절대 악인들을

죽임으로써 해소시키는 덱스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턴가

덱스터를 응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덱스터 역시-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이 광기를, 어릴 적에 아버지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틀어주지 않았다면

일반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죽이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되는 것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종의 기원의  유진 역시 마지막엔, 이모와 형까지 죽이고

 살인마가 되어감을 가리키는 어조로 이 책은 끝마친다.

  어렸을 적 - 자신의 욕구를 잘 해결하고

 

만약- 어린 유진을 , 그의 어쩔 수 없는 욕구를 주변 사람들이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치료해주었다면?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살인마청소기 덱스터를 만든 덱스터 아버지처럼

그 '방향'을 잡아주는게 옳을까?

아니면, 그 '살인'이라는 팩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렇게 태어나버린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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