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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폼페이:최후의 날 - 인간의 잔인함을 생각하게 하는 재난영화.

by Boribori:3 2016. 12. 27.

 

이탈리아 여행을 가기 전에 보려했는데 못보고 가서, 갔다와서 보게 된 영화.

 

실제로 일어났던 일과 그 시대를 배경으로 전투씬, 화산폭발씬, 로맨스 모두를 노린 영화였다.

 

그러나 너무나 평면적인 주인공들 캐릭터와, 예상되는 스토리전개로 진부한 재난영화라고 느껴졌다.

 

재밌게 본 재난영화였던 타이타닉, 투모로우, 아마겟돈.. 등을 기대하고 봤는데 그 때 봤던 그 감동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가봤던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 역사공부? 한답시고 , 아니 사실 잘생긴 주인공에 빠져

끝까지 본 영화같다 ..

 

그래도 어차피, 처음부터 이 영화의 백그라운드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즉, 로마문명 하에 있던 폼페이라는 큰 도시의 문화와, 그 큰 도시가 순식간에 몰락했다는 팩트에..

 실망하고 뭐 이런 건 전혀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 검투사에 대해 찾아봤다. (라틴어로 gladiator. 글래디애이터라는 영화나, 이 검투사들의 삶을 그린 스파르타쿠스도 유명하다.) 그리고 정리해봤다.

 

<검투사, Gladiator>

 

검투사는 고대 로마제국 때, 원형경기장에서 상대 사람이나 맹수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정확한 기원에 대해선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검투사 시합이 그려진 벽화 유적 등을 통해 남부 이탈리아인 캄파니아 지방에서 유래됐다고 추정된다. 처음엔 고인 추도를 목적으로 했던 이 투기대회는 점차 관중들의 볼거리, 정치적 권한행사 등으로 목적이 변질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로마로 유입된 후엔 대규모로, 큰 행사처럼 행해졌으며 80년에는 5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 로마에 세워졌다. 대부분의 검투사는 전쟁포로, 범죄자, 노예였지만 승리를 많이 해 살아남은 검투사들은 큰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어 일반 자유민들도 지원하여 참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참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소름이 끼친다. 동물들은 본인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생명을 잡아먹으며 배가 부르면 더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그저 재미로, 다

른 생명체들을, 게다가 동족을 죽이고 이에 환호하며 열광한다.

어떻게해서 이런 생명체를 하나님은 만드셨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고, 같은 인간도 지배하려 하고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방법만 바뀌었지.)

본인이 윗자리에 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 닥치는 대자연의 분노는 이 인간들을 싹 쓸어버린다.

폼페이 경기장에서 검투사의 피에 열광하는 관중들과 정치인들을

순식간에 묻어버린 폼페이의 화산도 이를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

 

<줄거리>

그의 가족들과 이웃들, 모든 그의 부족들이 로마 군사들에 의해 학살당하나,

시체 더미에 숨어 목숨만은 건진 주인공 마일로(키트 해링턴 분)의 끔찍한 어린 시절로 영화는 시작된다.

천애고아가 된 마일로는 결국 로마군사의 눈에 발견되고 노예로 끌려간다. 그리고,, 검투사가 된다.

감옥에 갇혀지내며, 남들을(같은 처지의 다른 검투사들) 죽이기 위한 훈련을 할 때와,

실제로 경기장 안에서 생사가 달린 처절한 살육경기를 할 때에만 감옥에서 풀려나는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하는 그는, 그를 안타까워하며 응원하는, 폼페이 영주의 딸 카시아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검투사끼리의, 남을 죽이고 살아남은 자는 남겨지는 경기가 아닌,

수많은, 무장한 로마 군사들에 의해 둘러쌓여 학살 당할 처지에 놓인다.

그리고 이 때, 심상치 않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을 시작한다. 

 

<폼페이 역사적 배경>

 

로마에서 약 3시간 떨어진 폼페이는 (나폴리에선 기차타고 30분정도 가면 됐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가깝다. )

화산 폭발 전에는 매우 큰 , 날로 번창해가는 도시 중 하나였다. B.C. 89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

로마 문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79년 8월 24일 정오였다고 한다.)로 인해, 단 18시간만에 그 큰 도시가  화산재로 덮여져, 폐허가 되어 버렸다.

 

이 화산 대폭발로 당시 폼페이에 살던 사람들의 약 10퍼센트(약 2,000명)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화산이 폭발하며 내뿜는 용암, 고온 가스의 열기에 타죽거나, 질식하거나 하늘에서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화산암에 깔리거나.

 

출처: Wikimedia commons, 폼페이의 인간 석고상들.

(화산재에 덮여있던, 지금은 썩어없어진 시체들이 놓여있던 공간에 만들어 낸 석고형들)

 

그 때 저렇게 화산재에 파묻혀버린 사람들과 폐허가 된 도시가 다시 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랜시간이 지난 후였다.

 

79년에 화산이 폭발하였고 1549년, 수로공사 중 첫 유적이 발견되면서 발굴이 시작되었다니까, 약 1,500년이 지난 세월이 흘러서야 묻혀져버린 역사가 나타난 것이 되겠다.

 

현재는 이전 폼페이의 4/5정도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폼페이를 덮친 베수비오(vesuvio) 화산.

 

나폴리에 가서 바다 건너편의 저 화산을 바라봤었는데, 지금은 그냥 조용한 산 같다.

 

                                     나폴리에서 바라본 베수비오 화산과 폼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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