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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1987 후기: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by Boribori:3 2017. 12. 31.

 

연말. 오랜만에 엄마와 동생 ,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집밖을 나섰다.

온천에 가서 뜨거운 물로 목욕도 하고 저녁도 먹고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 영화를 보러갔다. 상영하던 많은 영화 중, 줄거리만 보고, 이건 꼭 봐야겠다 싶은 영화라서 망설임없이 1987이라는 영화를 선택했다. 사실 연출력이나 스토리전개 등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 같은 건 없이 줄거리만 보고- 이런 영화는 꼭 봐줘야한다는 생각으로 보러갔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독재정권에 맞서싸운 민주주의 운동가들, 시민들 이야기이니까 진부하고 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숨을 놓을 수 없었고 30년전 그때 그곳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그들은 나를 볼 수 없는 투명인간의 상태에서, 아주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감상평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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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영화 속 배경은,  21살 꽃다운 나이였던 대학생 박종철이 공권력의 고문, 가혹행위로 목숨을 잃은 사건을 불꽃으로 6월민주항쟁이 일어났던 1987년. 전두환이 대통령이었던 군사독재정권시대. 전두환은 기존의 간접선거를 계속 유지하여 대통령으로 남아있고자 개헌(간접선거->직접선거로의)논의를 막으려 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호헌철폐!(=헌법을 유지하는걸 반대한다!) 를 외치며 독재자 전두환정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민주주의의 열망으로 펄펄끓던 1980년대.

#줄거리

서울대 언어학과의 박종철군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공안당국으로부터 불법체포되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다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공안당국은 이 사실을 은폐하려고 시신을 부검없이 바로 불태우려 하고..

이를 은폐하려고 하는 공안당국측과, 진실을 알리려고 하는 최검사, 기자들, 교도관들, 시민들이 부딪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링크를 공유한다.

(박종철고문치사 사건과 6월민주항쟁 관련 요약 링크

2016/11/16 - 6.10 민주항쟁, 시민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6월 민주화 운동.

2017/01/14 - 30년전 오늘, 6월 민주항쟁의 불꽃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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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무거운 주제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깨어나라, 사고해라, 움직여라' 등의 메세지를 외치며 가르치려 하는 틀에박힌 교과서나 다큐멘터리 같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영화 1987은 그 시절을 겪었던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진심을 담아내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의 조카 연희(김태리 분)가 했던 말.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한창 민주화열망으로 뜨거웠고 아팠던 그 시절, 연희는 그들의 운동에 별 관심이 없는, 해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래봤자 총을 든 무장한 군인들에게 당하기밖에 더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그래서 연희는 진실을 밝히려고 뛰어다니는 삼촌이 밉기만 하다. 가족이나 잘 챙기지, 왜 죽음을 무릅쓰냐고.

이렇게 연희는 군부정권과 ,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 사이,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자신과 가족의 안위가 중요했던 중립인이었다. 그녀는 정권과 맞서는데 도와달라는 주변사람들의 요청조차도 불편하고 싫다.

 

그런데 영화는 보여주고, 말한다.

세상은 바뀐다고.

힘차게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영화는 중립인이었던 연희가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시위현장에 나서고, 광장을 울리는 시민들의 목소리 중 하나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

1987년, 그날의 뜨거움은 어느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프고 불안했던 국민들이 '스스로' 일궈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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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독재정권이 무너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목이 터지도록 외쳐댔던,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받아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붙잡혀가 고문을 당하던 시절,

내려진 보도지침에 반발하며 진실을 알리려는 언론인의 본분을 지키려던 윤기자,

권력의 개가 되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으나 달콤하지만 독이 든 꿀을 거부할 줄 알았던 최 검사,

높은 위치 사람들의 불의를 보고 못본척 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교도관,

힘도, 돈도 없는, 가진건 건강한 몸과 뜨거운 열정뿐이었던 대학생들,,

그들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위치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였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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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정권시절, 박종철 한 사람이 공권력에 의해 죽었을 때,

그의 죽음을 은폐하려고 하는 총과 칼을 든 정부가 무서워 모두가 나서지 못했다면. 진실은 끝까지 밝혀지지 못했을 것이고 박종철의 죽음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진 어이없는 심장마비 사건으로 끝났을 것이다.

끔찍한 상상을 해보면 아직까지 살아있는 전두환이, 여태 이 나라의 대통령일수도. (지금은 코믹한 상상이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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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0년 전이다.

벌써 내가 20대 후반인걸 생각하면, 이 세월이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갔던 걸 생각하면 정말 얼마되지 않은 최근의 일.

그런데 30년 후의 2017년 대한민국은, 많은 면에서 그 때와 참 다른 것 같다.  그 중 하나를 꼽자면, 민주주의.

그 시절을 겪지 못한 90년대에 태어난 나로서는, 지금 내 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해 아주 당연하게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는, 그냥 어느순간부터,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게 아니었다.

모두 나와 같은 이 나라의 국민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부르짖어 일궈낸 것.

 

뜨거웠고 아팠던 1987년을 통해서, 지금이 있을 수 있었음을 알게 해주고

뜨겁고 아픈건 지금도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하고, 움직이고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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