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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아이 같아진 할머니.

by Boribori:3 2018. 8. 20.

 

웬만큼 아픈 건 자식들 걱정한다고, 병원비 나간다고 꾹꾹 참으며 아픈 티도 내지 않는 할머니가,

무릎이 점점 안 좋아지셔서 밤에 아파서 잠도 못 주무시겠다고 하셨다.

가만 있어도 아프니, 일어서서 다리에 하중을 싣는 것 자체가 고통.

 

그런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아파서 안색이 좋지 못한 할머니 , 계속 미안하다는 말씀 뿐이다.

내가 아파서 네가 고생한다, 아픈 게 원망스럽다, 미안하다,,

 

아직 수술하긴 이르다고, 약 먹으며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그때까지 집에서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몸조리 잘 해야 한다는 의사 .

 

그런데 할머니를 입원시키기로 했다. 집에 가면 움직이실게 뻔하니까.

병원비 나간다고, 약만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할아버지 밥 차려줘야 된다고 입원을 거부하시는 할머니.

아파서 끙끙대시면서 잠깐 서있는 것도 엄청 고통스러워 하시는데 밥을 차려줘야 된다고?

.

.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집안일에 손을 댄 적이 없으시다.

그렇다고 집 밖의 일을 해서 생계를 책임지지도  않으셨다.

모든 것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할아버지가 뭐 먹고 싶다고 말만 하면 할머니는 아무 소리 없이 차려 주신다. 할머니가 아프셔도, 앓아 누우셔도 예외는 없다.

잘못 된 가부장 모습의 끝판왕일 것이다.

 

평생을 자식들, 남편 뒷바라지 해오신 할머니.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그런 '순종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저런 남자를 만나 고생하느니 혼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수십번 수백번씩 하였다.

 

그런 답답한 할머니는 결국 성화에 못 이겨 입원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계속 , 할아버지가 소 내장이랑 돼지비계를 잘게 썰어 사오라 했다고 그거 먹고싶어 한다고 걱정을 하셨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옷을 환자복으로 갈아입혀 드리는데, 신발을 신기고 벗겨 드리는데 ,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까지 모셔가 바지를 내리고 올려드리는데,

사람이 늙으면 아이같아 진다더니. 그걸 몸소 느꼈다.

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처럼,

병원에선,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낙상의 위험도 있고 - 언제 비상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며

보호자가 항상 상주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28년 살면서 , 늘 할머니 사랑을 받기만 했지 그 반대의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잘 해야지,,,

.

.

부모의 보호 아래 자란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뜨거운 혈기로 젊음을 뿜어내기 시작하면

부모는 그만큼 더 늙어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나보다 더 작아져 있고 약해져 계신 부모님.

 

여기엔 신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새벽 1시, 할머니들이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병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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