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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자/중동지역

4차 중동전쟁: 욤키푸르(Yom kippur) 전쟁 배경, 결과 및 시사점

by Boribori:3 2017. 5. 22.

지난번, 

중동전쟁의 배경 및 원인 (http://boriborikim.tistory.com/209)

제1차~3차 중동전쟁 (http://boriborikim.tistory.com/216)

에 이어 오늘은 4차 중동전쟁에 대한 정리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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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이후 수차례간 이루어진 아랍-이스라엘 전쟁 중 하나. 

제4차 중동전쟁, 라마단전쟁(이슬람교의 금식기간인 라마단에 일어나서), 10월전쟁(10월에 일어나서)이라고도 한다.

제3차 중동전쟁인 6일전쟁을 승리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시리아의 골란고원의 절반, 요르단 영토였던 웨스트뱅크를 점령했고, 이에 분개한 아랍측이 벼르고 벼르다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욤키푸르' 날에 선제공격 실시.


언제:1973년 10월 6일-25일. (약 20일)

누가: 이스라엘 vs 이집트, 시리아를 주축으로 한 아랍연맹군. 

       선공: 이집트,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

어디서: 시나이반도, 골란고원과 인근지역.

결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승리, 이집트의 정치적 승리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배경

앞서 3차례의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모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내에서의 독립을 (굴러온 돌 주제에 영토의 거의 50%나 차지하며) 인정할 수 없어 전쟁을 벌였으나- 계속된 패배로 오히려 이스라엘의 땅이 점점 커짐으로써 화도나고 수치스럽기도 했을테다.


특히 3차 중동전쟁인 6일전쟁(1967)에서 말 그대로 일주일도 안되는 6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처참한 패배를 당해서, 그 굴욕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간의 중동전쟁에서 아랍 측의 가장 큰 주축이었던 이집트는  6일전쟁 패배 후 대대적인 군사훈련과 군 개혁을 실시한다. 


특히, 이스라엘이 운하 동쪽에 쌓아놓은 모래방벽(6일전쟁 후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점령한 시나이반도를 장악하며 1968년 설치. 이스라엘의 참모총장 바레브의 지시 하에 설치되어 바레브 선이라고도 함.)을 뚫기 위해  유사한 모래방벽을 쌓아, 이를 고압의 수력펌프로 박살내는 연습을 반복했다.




경과


반면 이스라엘 측은, 3번의 계속된 아랍군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서- 경계를 낮추고 있었다. 이만큼 눌러놨으니 미치지 않은 이상, 먼저 또 달려들진 않겠지- 달려든다 해도 또 박살내면 되지~하는 생각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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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있던 아랍측의 이집트와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기로 약속하고,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한다. 동시에, 그러나 다른 두 방향에서. 이날은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금식기간인 라마단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사진출처: http://adst.org/2015/09/negotiating-the-end-of-the-yom-kippur-war/)


그 날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매우 성스럽게 여기는 '속죄의 날' (*욤키푸르)이었다. 

*욤키푸르(Yom Kippur):  유대인의 최대 명. 모든 유대인들은 이날 기도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금식 하며 그동안의 죄를 회개하며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사진출처- http://www.shilohmessianic.com/yom-kippur)


이번의 아랍군들은 이전의 오합지졸 아랍군들과는 달랐다. 이집트와 시리아 군사들은 삽시간에 이스라엘군이 지키고 잇던 바레브선(모래방벽)과 골란고원 요새를 돌파했다. 시리아군은 골란고원을, 이집트군은 시나이반도로, 각각 다른 요새를 맡았다.


유대인들의 최대명절인 속죄의 날에, 열심히 기도하며 속죄를 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으로 초반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곧 반격에 성공한다. 


이스라엘의 평소 군사력도 컸겠지만 상대 군사들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으며 엄청난 병력을 끌고 왔기에 ,

이스라엘 반격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의 지원이 컸다고 본다. 초강대국 미국은 이스라엘 건국 이래 주욱 이스라엘 편에 서 왔으며 욤키푸르 전쟁 때에도, 물적, 군사적, 정보적 지원을 해주며 이스라엘에 전세역전의 깃발을 쥐어준다. (미국의 정찰기 SR-71 Blackbird가 전쟁지역을 날아다니며 적군이 어디 위치해 있는지 이스라엘에 알려줬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적은 병력으로 효과적으로 그 수많은 아랍연맹군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결과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군 측은 초전 기습에만 승리했지, 결국 역전당함으로서 군사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이 전쟁은.. 개전 3주도 채 못되어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가고 있었고 더 큰 전쟁을 우려한 유엔과 미국(이스라엘지원), 소련(아랍군 지원)의 제재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분명  승리하였고 자신들이 유리하게 휴전협정을 맺었었다.(1974.01.18) 그런데 이는 이스라엘 전쟁사에서 가장 큰 굴욕전 중의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처참하게 패배했을지도 모르는 이 전쟁은, 석유파동을 초래했다.

즉, 세계 석유 생산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아랍지역의 산유국들이, 주적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서방국가를 압박하기 위해 석유생산을 줄이고 가격은 엄청나게 인상한다.. 


그리고 이후 유엔은 중동의 평화에 대한 논의를 이집트와 하게된다. 이집트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게 된 것. 그리고 3번의 연속적인 전쟁에서 아랍 연맹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며 승취감에 젖어있던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겪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방심하면 안된다는 큰 깨달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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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키푸르 전쟁은 외교안보에 있어서는 절대로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소련과 미국이 참 싫었다.

지들이 뭔데 이렇게 남의 전쟁에 맨날 끼어들어서 일을 더 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6.25전쟁도 사실 이들의 이념대립이 아니었으면, 사실 그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수도 있었을 거 같고-

아랍군들과 이스라엘군들의 싸움 역시- 그 뒤에는 소련과 미국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늘져있다.

욤키푸르 전쟁에서 소련이 아랍군들의 이스라엘 공격을 돕지 않았다면(약 13,000톤이 넘는 군수물자를 때려부었다고.)- 미국도 이스라엘을 그렇게까지 돕지 않았을것이다. 미국은 1,2,3차 중동전쟁에 걸쳐 이스라엘을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안좋은 비난여론들의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고 꽤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지원을 요청했을 때 머뭇거렸을테고. 근데 소련이 이집트와 시리아에게 군수품들을 때려박는걸 보고 - 아니 이대로 가다간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겠어!!!!하고 보란듯이 또 이스라엘을 돕고.


전쟁은 힘있는 자들의 이익만을 위한 쓰잘데기 없이 잃는 것만 가득한 소모전 같다.

지금 날뛰고 있는 김정은을 수장으로 둔 북한과 전쟁이 나도 미국은 또 뒤에서 열심히 지원해주는 척 하며 자국 이익만을 위해 싸우겠지?ㅎㅎ.. 실제로 피로 물드는 곳은 아무리 동맹국일지라도 타국이니까.

 

다른나라에 의존하면 안된다. 꼭두각시밖에 더 되겠어?

우리나라도 국방력 미국에 의존할 게 아니라 스스로 힘 좀 키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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