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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창원생활체육]남편과 함께나간 첫 복싱대회(23.11.11)

by Boribori:3 2023. 11. 25.

2023.11.11.

때는 바야흐로 수능 닷새를 남기며 반짝 추워진 여느 토요일이었다. 

 아침 6시반,  체육관에서 모여 창원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와 해도 아직 뜨지 않은 꽤 어두컴컴한 시간이었다. 전날 밤 긴장돼서 잠을 설칠 줄 알았으나 (주짓수대회 전날은 늘 긴장돼서 잠을 못잤었음) 그래도 몇시간 숙면을 취해 컨디션이 꽤 괜찮았다.

사실 주기로 따지면 이날이 딱 생리통 가장 심하고 혈량도 많은 월경 둘째날이어야 하는데 정말 다행히도 이틀 먼저 터져서 생리 나흘차였다. 생리주기가 거의 칼같이 정확해서 아. 대회날은 정말 컨디션 거지같겠구나 어떡하지-싶었는데 대자연(???)이 나를 도와준 것 같다. 

 

이번 시합은 남편과 나의 첫 합동출전(?)이었다. 에너지를 채워줄 바나나와 갈증을 달래줄 물을 들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있는 모습이 나름 아마추어 복서같아 사진을 남겨보았다 .

좋냐?!

 

남편은 이 추운날 혼자 반바지를 입으셨다. 열이 아주 많은 분이시다. 이분의 성화에 못이겨 함께 나오게 된 복싱경기..

당신 응원만 하러 가면 안 되냐고 수십번을 거절했으나 (무대공포증으로,, 스트레스 심하게 받는 타입) 그런 나를 끌고 나온 분이시다. 덕분에 한달간은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곧바로 복싱장을 향할 수 있었다. (운동은 좋아하나 집밖으로 나가기까지 용기가 필요함)  나는 아무래도 벼락치기족인 것 같다. 시합이라는 목표가 생기고 날이 다가오니 없던 체력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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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남짓 운전하니 창원에 도착해있었다.

태어나 두번째 창원방문이다.

저번엔 친구들과 놀러갔지만 오늘은 단지 복싱경기만을 위해서 왔기에 마음이 어수선했다.  이때부터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지만 애써 괜찮은 척 해보았다. 

 

창원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것.

나의 소울푸드 돼지국밥 먹기!! (관장님 메뉴 선정 굿입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끈하고 고소한 국물에 잘 익은 깍두기와 간이 잘 밴 김치의 조합은 정말 최고다.

그치만 시합장 도착해서 있을 계체가 걱정돼 반도 못 먹고 남겨야 했다. 

 

그래도 속이 든든해지니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역시 한국인을 움직이는 건 밥심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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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바로 시합장으로 갔다. 

 

 

 

 

거울과 벽면에 붙어있는 대진표를 보니 아 내가 진짜 시합을 나왔구나 싶었다. 코로나 이전까지 심심하면 나갔던 주짓수대회도 안나간지 4년이 다 되어가니.. 굉장히 오랜만이다. 

 

우승자에게 줄 트로피들도 진열되어 있었는데 와우,, 트로피가 이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남푠은 트로피를 보자마자 반해서 어떻게든 이겨서 트로피를 가져와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만큼 진짜 예뻤음)

 

 

선수들 계체 끝나고 개회식 하고,, 시합은 예정했던 10시에서 20분 늦춰(몸풀시간을 주심) 아침 10시 20분에 시작했다. 

 남자 초/중등부 및 남자 40~50대 경기가 먼저 진행되었다.

여자 경기는 이들 경기들이 다 끝나고 한다고 해서 오후부터  하겠거니~ 싶어 오전엔 긴장 풀고 함께온 우리 체육관 선수들 몸푸는거 구경했다. 

 

울 체육관 에이스 꼬마선수의 셰도우 복싱..

아침까진 날이 꽤 쌀쌀했는데 이 친구의 열정은,, 지켜보는 이도 마음이 뜨거워지게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참 멋져!! 

우리 체육관 에이스 꼬마선수  빈 >< 

 

오전에 울 첵관 애기들 경기를 보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엄청 빠르게 슉슉 지나갔다. 아니.. 다들 왜이리 잘하는지 깜짝 놀랐다. 링 안을 휙휙 날아다녔다;; 

아... 체육관에서 나랑 스파링할때는 엄청 봐주던 거였구나..  고마워 ..!!!

 

 

생각보다 응원해주는 사람들 열기가 엄청나서 놀랐다. 특히 주짓수시합때와는 다르게 (매트 여러개있어서 한번에 여러 시합이 동시에 진행됨) 링이 하나라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링 위로 집중된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나는 더 긴장되는 시스템(??)이었다. 아냐 괜찮아 괜찮아 ~~~ 만 마음속으로 여러번 반복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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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경기 끝나고 주어지는 브레이크타임 20분,,동안 몸을 풀었다 . 쉬는시간 끝나면 바로 여자부 경기다 ㅠㅠㅠㅠ 여자는 역시나 참가인원 자체가 적어 초등부 제외, 나이 제한이 없었다. 전체 56경기 중 여자 경기는 총 3경기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가 내 경기였다.

내 상대는 19살이라고 들었다. 어머 벌써 띠동갑 넘게 차이나네.. 세월이여

 

이때부터 심장이 엄청 요동쳤던 것 같다. 긴장감이 갑자기 훅 치고 올라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관장님이 줄넘기로 땀좀 내라고 하셨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다리도 무거워져 줄넘기가 안됨.. 그래서 경기장 한바퀴를 뛰며 몸을 풀기위해 노력했다. 저질체력인지라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한바퀴 천천히 뛰었다. 

여자 초딩부 선수 은이랑!!

날씨는 이날 정말 좋았다. 푸른 하늘이 어찌나 예뻤던지 ~~ 한파가 예상되는 날이라 했지만 생각보다 햇볕이 쨍쨍해 낮에는 따뜻했다. 한바퀴 뛰고 줄넘기를 해보았지만 잘 안되서 몇번 넘다가 말았다. 첵관에선 2분 3라운드 줄넘기 안쉬고 계속해도 멀쩡했는데 아무래도 긴장돼서 숨이 차는 것 같았다 ㅜㅜ

몸이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으니 더 긴장되었음 ㅋㅋㅋㅋ

 

그래도 우리 트레이너 세분의 어시를 받으니 점점 몸이 풀렸다.  잡아주시는 미트에 쨉쨉 원투~를  날려보았다.  

트레이너 욱님.. 감사해여ㅠㅠ

역시 난 혼자하는 유산소운동엔 흥미도 소질도 없는갑다.. 움직이는 목표물(미트)을 때리니 갑자기 재밌어지면서 잔뜩 굳었던 근육이 살아났다 . 

 

몸 풀고 좀 있으니 내 차례가 되었다. 세개밖에 없는 여자부경기중 내 경기는 두번째였다. 기다리는동안 심장이 몸밖으로 튀어나갈듯 요동쳐서 토할 것 같았다.  내가 왜 이 대회에 나오는데 오케이했나 싶으며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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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내 이름이 불리며  .. 링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링 위로 올라가니 마구 요동치던 심장이 차분해졌다. 이왕 일어난 사건(?) 해보자~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보자~~ !! 

8~9년 전인가? 20대 초중반,, 뭣도 모르고 킥복싱대회 나갈때 코치님이 말씀해주셨던 것도 떠올랐다. 눈빛으로 기선제압을 하라고.. 아파도 아픈척 하지 말 것이며 지쳐도 지친 티를 내지 말 것이며.. 상대도 똑같이 두렵고 떨리고 맞으면 아픈 나랑 똑같은 사람이라구,,

 

그대로 행했다. 

 

가장 떨렸던 순간

1라운드는 정말 정신없이, 내가 살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던 것 같다. 그러다 오른손 훅에 머리를 한번 제대로 맞은 상대가 당황하고 아픈 기색이 보이니 더 힘이 났다. 그리고 링 아래에서 응원해주는 팀원들의 환호와 격려가 귀에 꽂혀서 더 파이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근데 2분이 언제 이리도 길게 느껴졌었나요.. 

그래도 지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점점 사라지는 내 복싱 스텝.. 스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간의 관장님 지도를 통해 잘 알고 있으나 스텝 밟을 힘이 나지 않았다 ㅠㅠㅠㅠ 그래도 그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했다.

 

1라운드- 고작 2분밖에 안되는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2라운드 전까지 30초 쉬는 시간은 왜 10초처럼 짧게 느께지는 건지.. 1

관장님께서 물을 먹여주시며 전략을 말씀해주셨다. 호흡하는 거 잊지 말 것이며 (사실상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 긴장되어 호흡을 자꾸 잊어버려 더 체력을 깎아먹음) 바디를 더 노릴 것이며 이상은 비밀이다

 

 

그리고 2라운드는 체력이 거의 소진되어 역시나 가드 올릴 힘도 없었다.  그래도 1라운드때 내 기세가 훨씬 좋았으니 여기서 주저앉으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열심히 버텼다. 상대도 지친 기색이 훤히 보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2라운드의 2분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짐 ㅋㅋㅋㅋㅋ

.. 그리고 해냈다!!  

끝났어!해냈어! 가장 기뻤던 순간.

 

휴.. 저때 밀려오는 벅찬 감동과 희열은 아마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서 있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바로 뻗었다. 저러고 다음날까지 온몸의 근육이 아우성쳐서 종일 잠만잤던 것 같다.

관장님이 덮어주신 벅지 가림용 수건 ㅋㅋㅋㅋ쏘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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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기 끝나고 나니까 아까 느꼈던 긴장감과 두려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져 이제 남은 팀원들 경기를 보다 집중해서 잘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정말 우리 체육관 선수들 다 너무 잘해서.. 본인 상대가 우리 첵관 출신이라 하면 허걱- 할 것 같았음. 승패를 떠나서 다 너무 멋지고 재밌는 경기를 이끌었다!!

안녕 이제 오빠차례야~~

아까 긴장한 나를 보고 놀렸던 남편이 이제 본인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낯빛이 떵색이 되어가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화이팅~~ 

 

30대인 남편의 경기는 거의 맨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에서 세번째정도? 남자는 인원이 많아 초등부/중등부/고등부/20대/30대/40~50대 이렇게 여섯으로 나뉘어진게 신기했다. 

그의 경기는 54번째였는데 거의 오후5시쯤 됐다. 아침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기도 아마 지쳤을 것 같다.

일찍 경기하고 구경하는 게 심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ㅁ; 

차례 기다리다 지친 남표니

 

그리고 시간은 흘러 다가온 그의 차례. 

처음보는.. 잔뜩 긴장한 경기모드에 돌입한 남편..

사실 내 경기보단 남편이 더 걱정되었던 게 파워와 스피드가 장난아닌 남자들( 특히 남편은 체격이 큰 80kg급이다.. )  경기에서 상대 펀치 머리나 갈비 쎄게 맞고 다칠까봐. 조마조마했다. 게다가 남편은 35살 인생 통틀어, 상대와 겨루는 많은 무술 종목(남들 다 해봤다는 태권도도..) 하나도 해보지 않고 복싱만 딱 6개월 배운 쌩초보였다. (주짓수도 처음에 나 따라 1달 등록했는데 첫 스파링에 어깨 나가서 그 이후로 못 함) 

 

그런데..!! 오... 2라운드 끝까지 버팀 + 승리까지 따낸 남편 !!! 

사실 상대의 유효타도 많아 긴가민가했는데 (남편이 펀치를 날리면 카운터 날리는 아웃파이터 스타일) 남편의 인파이터식 밀고 들어가는 기세를 심판이 더 쳐준 것 같다. 남편의 손을 들어올려줬다 !!

그 역시 모든 체력을 다 소진하여 링에서 내려오자마자 주저앉았다 ㅋㅋㅋㅋ 나한테 맨날 저질체력이라 놀리는 분께서 링 위에선 나보다 더 빨리 지쳐 2라운드땐 죽을 것 같아보였다.. 

철인3종을 완주하고나도 이렇지 않은 양반의 신세계적 체험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말했다.  철인3종 체력과 스파링체력은 완전히 다르다고. 상대의 기술과 힘, 체력을 예상할 수 없기에 밀려오는 긴장감이 체력을 너무 빠르게 소진시킨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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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린 부부 챔피언이 되었다~~ 얼마나 뿌듯하던지 !!! 경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 떨려서 날 끌고나온 남편이 원망스러웠는데 끝나고 나니, 게다가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으니 그 희열은 엄청났따...!! 

복싱경력 6개월 남편과 남편 뒤따라 뒤늦게 등록한 복싱경력 4개월 초짜부부가 함께한 첫 복싱대회의 짜릿한 결말  >.<  헤헤헤헤헤헤헤헤호호호하하하하~

 

다신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위해,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우린 참 열심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체육관!! 다들 너무 잘한다 싶었는데 참전한 13명 중 10명이 우승하여 단체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우리도 이렇게 뿌듯한데 관장님은 얼마나 뿌듯하실까 싶다 >< 

정말 저날의 영광은 관장님께 돌려요... 지도 잘 해주신 멋진 스승님 덕분입니다. 

 

뿌듯한 울 관장님

진근홍복싱 화이팅!! 

 

 

그리고 우리 부부도 화이팅 ㅋㅋㅋㅋㅋ 

이날 받은 상장과 트로피는 .. ( 아 아무리봐도 트로피 진짜 너무 멋지다) 

 

울집 진열장에 잘 전시해두었다.  

여행하며 사모은 각종 위스키들과  웅이의 테니스 우승 트로피에 내 주짓수 메달, 그리고 이제 복싱 트로피까지!! 이보다 뿌듯할 순 없다.

 

그리고 이날의 뽕이 넘쳐 흘러 담날까지 복싱대회 옷(그날 못입은 홍색)을 입고  집안을 활보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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