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코로나 확진자의 삶:격리 4일차
2019년 12월, 스페인 여행을 끝으로 2년간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2년동안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란 그 2년동안 어떤 나라보다 열심히 방역을 했지만 오미크론이라는 변종바이러스가 들어오자 그동안의 노력들이 무색해졌다.
하루에도 몇십만명의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
누적 확진자 1500만명.. 전 국민이 10명이라면 그중 3명은 걸렸다는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걸리지 않고 어떻게 비감염자로 잘 버티고 있네,, 싶었을 때 확진이 되었다. 요즘 내 주변에서도 확진자들이 여럿 나와 누굴 통해 감염이 되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예전엔 보건소가서 pcr검사를 통해 정확한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 요즘엔 동네 병원가서 신속항원검사 받고 양성 나와도 인정해주나보다.
신속항원검사는 정말 신속했다 .
의사가 내 목을 훑고(어찌나 깊게 넣었는지 구역질 때문에 3번이나 다시해야했다.. 우웨에엑) 15분 정도 대기실가서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고있는데 1분만에 부르셨다.
"벌써 떴네요~ 양성입니다"
자가키트로 할땐 10분 넘게 기다리니 뜨던데..
그렇다.. 공식적인 코로나 팬데믹시국의 확진자가 된 것이다. 기분이 요상했다. 팬데믹은 팬데믹인가보다. 나도 걸리고 친구들도 걸리고 친척들도 걸리는 거 보니.
때는 선선한 봄바람에 벚꽃이 부드랍게 날리는 4월 6일 오후 2시였다 .
왜 하필 지금이냐??? 이번 주말은 보기힘든 똘들과 이번엔 꼭 보기로 약속하며 호텔까지 잡아놓은..1년만에 셋이 만나기로 한 날이자 솜솜이 출산 전 마지막 모임이 있단 말이다 ㅠㅠ 게다가 일요일엔 예식장 투어상담까지 잡아놓은 상태였다 하하하
어찌되었든 난 확진자이므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안에서 일주일을 잘 지내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틈틈히 쓰는 일지~ 나중에 시간 지나고 읽으면 재밌을 것 같아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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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생활 시작
동거인 없는 1인가구라 방 안에만 갇혀있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만 해도 되는게 어딘가.. (예전에는 2주 격리였다)
격리 방침을 확진판정 내렸던 병원에서 hard copy 안내문으로도 주고 관할 보건소에서 문자, 전화로도 안내해준다.
전화는 모르는번호로 계속 오길래 받지 않았더니 받을때까지 전화가 왔다. 그래서 받으니까 보건소였다. 증상이랑 동거인 여부 등 이미 안내 문자에 온 조사서 링크에 제출했던 내용들을 다시한번 확인하셨다. 쓰레기는 모았다가 격리해제 되는날 쓰레기봉투 한 장을 더 싸서 이중밀봉해서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엄청 좁은 고시원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은 쓰레기 못버려서 나오는 균들로 다른 병들이 걸리겠네 하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책꽂이 배송완료, 그러나..
격리 시작과 함께 그렇게 기다리던 책꽂이용 선반이 도착했다. 그렇게 안오더니 이제서야!
이제 시간도 많겠다~ 한번 만들어볼까? 집에 돌아다니던 책들도 정리하고 집 한번 예쁘게 단장해야겠다~하고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너무 무거워서 혼자 조립이 불가한 것이었다. 여러방법으로 시도해보고 증세가 호전된 4일차에 다시한번 도전해봤지만.. 결국 포기했다.
격리중이라 이웃사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ㅠㅠ 일주일만 참자.
#배달의 민족
격리 1~3일차엔 열, 오한, 두통, 심한 기침, 목 컬컬함이 심해 입맛이 거의 없었지만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선 잘 챙겨먹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나름 건강하게 먹기 위해 노력했다. 격리용으로 장을 봐둔 재료가 없어서 배달을 시켜야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배달음식의 다채로움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거의 모든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네 !! 배달의 민족이 정말 맞는 말인 듯 하다..
배달시키면 1회용 플라스틱 등 쓰레기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이번에 시켜먹은 곳들은 포장이 최소화되어 좋았다. (게다가 종이여서 심적 스트레스가 덜했다.)
확진되면 후각/미각을 잃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내 감각들은 대견하게도 4일차인 오늘까지 잃을 기미없이 잘 살아있다.
#재택근무
수요일에 확진판정받고 수/목/금을 출근을 못했지만 재택근무를 해야했다.
인터넷이 있으니 다른 건 상관없지만 사무실에만 깔려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어 오히려 번거로운 점이 많았다 ㅠㅠ 직접 확인하면 훨씬 빠를 것을 삼실 정상근무 중인 다른 직원을 통해 알아보게하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시간도 걸리고 ..
그래도 확실히 편한 잠옷입고 아무때나 커피나 차도 내리고.. 원한다면 누워서 해도 되는 재택이 좋긴 좋다!!
갤탭과 폰으로 회사 업무를 챙기다보니 더 격리기간이 지루할 틈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격리중이지만 금요일이 오는 게 좋았다 불금~~
#사랑의 불시착
그리고 금요일 재택 퇴근 후. 컨디션이 점차 회복되고있다 증상중 가장 힘들었던 오한이 사라졌다. 기침은 아직 계속 나지만..
그래서(?) 저녁부터 시작해 토요일 새벽6시까지, 약 12시간을 투자해 사랑의불시착이란 드라마를 몰아서 쭉봤다. 이미 봤었던 드라마지만 좋아하는 배우인 현빈과 손예진 결혼 기념으로 한번 더 봐줬다. 다시봐도 이렇게 재밌을 수가? 이런 명작들은 몇번을 봐도 느끼는 게 새롭고 감동적이다. 이불이 젖도록 울었던 것 같다 ;.;
어차피 집에만 계속 있어야 하니 날씨 좋은 주말 토요일도 소용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더 마음 편하게 아침이 오기까지 binge watching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새삼 21세기 기술력에 감탄한다.. 방구석에 앉아서 일도 하고 영화도 보고 뉴스도 보고 ,,
이러니 현대인들의 뇌와 눈이 쉬지를 못하나보다. 끊임없이 뭔갈 하고있고 보고있다..
#햇살쬐고싶다!!!!
워낙 혼자 잘 놀고 어떤 환경에든 적응을 빨리하는 스타일이라 사실 이번 격리, 첫날에만 조금 답답했지 그 이후론 너무 편하고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사실 책도 봐야하고 게임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영화도 보고 늦잠도 자고 하려면 혼자있어도 심심할 수 없다. 근데 가장 괴로운 건 따뜻한 봄날씨에 실내에 있어야 하는 거다. 광합성하러 나가줘야 하는데..
베란다 창문을 보니 초록 잎사구들이 푸릇푸릇 나있다. 벚꽃은 벌써 다 지고 없다고 한다. 확진 판정 받은 날까지만 해도 벚꽃 피날레였는뎅..
#독서시간 확보
확실히 집에 혼자 있어야 하니 자유시간이 아주 많아졌당. 원래 퇴근하면 주짓수도 가야하고 친구랑 밥도 먹오야 하고 주말엔 여행도 가야하고 강아지들과 놀아줘야 하고,, 꽤 바쁜데 격리기간동안은 이것들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읽기로 하고 시간 없다는 핑계로 (정말 핑계에 불과..) 읽지 못하고 있었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처음 확진자가 되었던 당일날엔 외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우울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다신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들이 너무 소중한 것 같고 재밌다.ㅎㅎㅎㅎㅎ
#엄마밥 최고
배달음식이 질려 엄마에게 헬프요청. 엄마가 정성껏 요리해 만든 건강반찬들. 문앞에 두고가셨다. 내가 좋아하는 우엉, 더덕, 콩나물 ><
밥은.. 오랜만에 전기밥솥을 써볼까, 했으나 쌀 밀봉이 잘 되지 않아서인지 쌀벌레들이 생겼다.. 보자마자 기겁하고 다시 지퍼백을 닫아버렸다. 나한테 해도 끼치지 못하는 저 작고 하찮은 벌레는 왜 이렇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지 모르겠다. 햇반으로 가자ㅜㅜ
혼자 사니 전기밥솥에 밥을 하면 양을 맞추지 못하겠다
#끝이없는 집안일
사실 이번 격리기간동안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끝이 없는 집안일........ 엔트로피 증가 법칙의 진리.
계속 집에만 있으니 움직이고 싶기도 하고, 운동삼아 청소기돌리고 닦고 물건들 제자리로 보기좋게 정리하고 집안일을 했다. 계속 있어야 하는 공간이니 깔끔한 곳에 있고 싶기도 했다. 근데 신기한 것은 분명 청소를 다 해놨는데 몇시간 지나면 원상복귀가 된다는 거다. 옷도 어차피 계속 잠옷차림이니 옷때문에 지저분해질 일도 없는데 도대체 왜..? 머리카락은 아무리 주워도 계속 떨어지고 설거지 거리도 아무리 씻어놔도 뭘 또 먹는 이상 계속 생기고 먼지도 아무리 닦아내도 계속 쌓이고.. 인간 한명이 한 공간에서 오랜시간 지내며 '산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계속 소모하고 찌꺼기를 배출해낸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모르고 있던 사실도 아니었건만 . (갑자기 궁금해져서 혼자 살았던 자취 경력(?)을 따져보았다. 17살~26살, 그리고 지금. 10년이다...ㄷㄷ) 그런데 이렇게 수일동안 24시간 내내 외출한번 없이 집에만 있었던 경험은 생각해보니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
집에 있으니 계속 해야할 잡다한 집안일거리들이 눈에 보인다ㅠㅠ 무한 쳇바퀴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별일 없이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엔트로피는 증가해 항상 집안은 무질서해진다. 질서를 유지하려니 힘이 드네.
#랜선 미팅
기술이 발달해서 영상통화 기능이 많이 좋아졌다
어젠 육아스트레스로 우울한 인도와 1시간 영상통화하면서 함술같은 혼술을, 오늘은 원래 코로나만 걸리지 않았다면 호텔서 함께 생파를 하고있었을 똘들과 랜선 생축을 했다.
인도는 이날 영통1시간동안 소주1병 맥주2캔을 마시고 만취했다... 코로나만 아니면 바로 달려갔을 텐데.
영상으로 본 솜솜이는 만삭 임산부답게 한달전 봤었을때보다 배가 더 불러있었다. 힘들게 잡은 출산 전 마지막 모임약속을 놓쳤으니 이제 다음에 보려면 애기낳구 적어도 100일 후다.
왜 하필 이때 걸려가지고 🥲
다른건 몰라도 사람은.. 직접 만나야 한다. 영상으로 보니 더 보고싶다.
이상, 격리 4일차를 마무리하고있는 팬데믹 2년차 시대를 살고있는 32살 나의, 오랜만에 쓰는 일기.
이제 퍼즐을 마무리하러 가볼까나.
(막내동생이 언니 심심할까봐 1000피스짜리 퍼즐을 보내줬다. 얼마만에 해보는 퍼즐이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집착을 느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