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시위 이유 정리, 왜?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미얀마 군부 최고사령관이 대통령, 아웅산수치(Aung San Suu Kyi) 국가고문 등 정부 핵심인사들, 민주주의 운동가 등을 구금했다.
작년 11월 총선에서 아웅산수치가 이끄는 민주민족연맹(NLD)정당이 압승한 것에 대해 군부가 부정선거라며 불복한 것. 부정선거였음을 증명하는 증거는 대지 않았다.
"부정선거 의혹제기 -> 선거 불복"
뭔가 이번 미국 대선때 바이든에게 패배한 트럼프와 많이 닮은 듯 했지만 불복 차원이 달랐다.
쿠데타 이후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군부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키고 있는데 군인들이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20일이나 지난 지금까지 외신은 미얀마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소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www.youtube.com/watch?v=2Z5FO2a-iRI
군부는 계엄령을 선포하며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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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포함해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 일본 등으로부터 해방되어 정부를 수립한 국가들은 많다. 이렇게 독립을 이룬 나라들의 대부분 공통점이 군부세력들로부터 민주화운동을 해야했다는 것.
미얀마도 민주화 운동들을 거치며, 군부세력들이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그런데 미얀마에선 아직도 군부세력들이, 선거로 뽑힌 집권당까지 무력으로 몰아낼 정도로 힘이 강력하다. 어떻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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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국가 개요
미얀마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태국/라오스/방글라데시/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이다.
수도는 나라의 중심에 있는 네피도이며 전국민 약 5400만명 중 90%가 불교도로 알려져있다.
인구 수는 5500만명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국토는 우리나라보다 6.7배정도 크다.
<국기, 국호 변경>
미얀마 국가명칭과 국기는 정권이 바뀌면서 2번 변경되었다.
Union of Burma(버마 연방) -> Socialist Republic of the Union of Burma (버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미얀마 연방공화국).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1948~1974년엔 별 5개가 큰 별 하나를 감싸고 있는 모양.
1974년~2010년 사용된 국기는 Socialist Republic of the Union of Burma 국기로
14개의 별들 사이에 보이는 건 톱니바퀴와 쌀을 뜻하는데, 각각 공업, 농업을 표현한 거라고 한다.
(미얀마의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국민의 절반 이상이 농업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한다. 그중 쌀농사는 전체 경지면적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기는 2010년 10월, 국명을 미얀마연방에서 미얀마 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바꾸며 함께 변경했는데 아래 사진과 같다.
우리나라는 1991년부터 미얀마라는 국호로 부르고 있으나 아직도 영국이나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미얀마와 버마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고 구글맵에도 미얀마(버마)로 병행 표기되어 있다.
<미얀마 민족구성>
미얀마 국민 5400만명은 버마족, 샨족, 카렌족, 라카인족, 몬족 등 135개의 수많은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민족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어, 한 국가로 통일되기 전엔 그들끼리의 싸움이 엄청 많았다.
현재 미얀마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을 중심으로, 다른 소수민족들과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내전으로 한시도 조용한 적이 없는 곳이었다. 사실 미얀마로 통일이 된 지금까지 내전은 이어지고 있다.
로힝야족도 그중 하나인데,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다음 포스팅에 따로 다뤄야겠다.
(미얀마의 과거 국명인 버마(Burma)도 사실 미얀마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에서 유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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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 미얀마는 버마족과 소수민족들, 그리고 주변국들의 갈등으로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영국 식민지시대(1824~>1885~1948)
19세기. 미얀마는 이웃나라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식민지배하고 있었던 영국과 부딪혀 세차례의 전쟁을 벌이게 된다.
소수민족인 라킨족을 진압하고 추격하다 인도 아쌈주까지 진격하다 영국의 코털을 건드린 것.
당시엔 프랑스가 베트남을 넘보고있었는데 영국 입장에선 미얀마가 라이벌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한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었다. 청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서도 좋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제1차 전쟁 1824~26년부터 시작해 제2차 1852, 제3차 1885년의 세번의 전쟁에서 미얀마는 영국에 세번 모두 패하며, 점차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며, 영국이 지배하던 인도의 일부로 병합되었다.
당시 영국은 미얀마를 아시아 식민지 경영을 위한 식량 공급지로 이용하였다.
이때 영국은 이미 전부터 식민통치를 하며 이미 입맛에 맞게 길들인 인도인들과 다른 소수민족들을 데려와서 버마족을 차별하고 탄압하는데 이용하였다. 이주된 인도 노동자들은 더 적은 돈으로 일은 훨씬 잘해, 기존의 버마 농부들은 인도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 영국은 버마족들을 게으르다고 판단했고, 버마족들을 공무원이나 군 복무 등에서 제외시키고 인도 사람이나 다른 소수민족들로 대체하였다.
심지어 소수민족들을 기독교로 강제로 개종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대다수가 불교도들로 이루어진 버마민족을 흐뜨러뜨리기 위해서.
버마족은 영국군은 물론이고 소수민족들에 대한 분노를 속으로 삭혀야 했다.
영국은 이렇게 미얀마의 민족, 종교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2차세계대전 이후 아시아를 떠난다.
#1948~ 영국으로부터 독립!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얀마(1948).
당시, 영국과 일본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을 이끌며 독립에 결정적 공헌을 한 아웅 산(Aung San) 장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다수민족인 버마족뿐만 아니라 소수민족들에게도 자치권을 약속하는 등 유일하게 민족 가리지 않고 미얀마 전국민들에 인기가 있었던, 미얀마의 희망과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에 빗대면 김구 선생님과 같은 인물.
현재 미얀마 국가고문으로 선출된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웅산 장군은 독립 이후 나라 재정비를 준비하던 중 암살을 당하게 된다.(1947)
미얀마 사람들에게 '국부'와도 같았던 아웅산이 사라진 미얀마는, 다시 민족, 종교 갈등의 수렁에 빠진다.
탄압하던 영국인들이 떠나고 연방주의자 아웅산이 죽고 나서,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버마족이 다시 주류가 된다.
그래도 이땐 영국의 민주정치를 본따 흉내내기라도 했었다.
그러나..
#1962 군사 쿠데타 , 네윈 장군: 쇄국주의/소수민족억압/외국인사절/일당독재!!
1962년 3월 2일, 네윈(Ne Win)장군 주도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는 혁명위원회와 버마사회주의계획당(BSPP)을 조직하여 국가를 장악하였다. 1974년엔, 버마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다며 국호와 국기도 바꾼다.
'버마 연방'이라는 기존 국호가 소수민족을 아우르는듯한 느낌을 줘, 소수민족을 차별하기 위해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수민족들의 무장투쟁을 진압하는 것이 군부의 가장 큰 목적들 중 하나였다.
이후 군 지도자들은 외국과의 교류를 차단시키는 등 강력한 쇄국 정책을 실시함과 동시에 미얀마의 모든 기업, 부동산들을 국영화하며 경제적 자급자족 정책을 실시한다. 국영화된 기업은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게 많을리 없는 군인들이 경영한다..
쇄국정책으로 외국의 투자도 받지 않고, 산업에 필요한 자재들의 무역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미얀얀마의 경제는 파탄에 이르르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버마식 사회주의'라며 불교와 정치를 일원화시키며 소수민족과 소수종교들을 탄압했다..
(네윈은 로힝야족은 미얀마의 소수민족으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로힝야족 탄압의 서초이기도 하다.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다.)
#8888 항쟁(8888 Uprising)
군부통치로 쌓여온 대중의 분노는 1988년 8월 8일,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된 민중항쟁으로 크게 폭발한다.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됐으나 군의 폭력진압으로 수천명의 시민들이 희생당하며 약 한달만에 실패로 끝난다. 이후에도 민주화 항쟁이 여러번 이어졌으나 모두 군부에 의해 진압된다.
다행히 이 참상은 외신들을 통해 보도되었고 네윈 군사정권은 국제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이 8888항쟁으로 네윈은 물러나게 되지만 새로운 신군부세력(네윈 측근 마웅 장군 주도)이 다시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1989)
그래도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을 진정시키기 위해 복수 정당제+민주적인 총선거를 약속했다.
그리고 1990년 5월 27일.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신군부는 당선자들을 체포하고 선거 무효를 선언하며 정권을 넘겨주기를 거부했다. 이제 민주주의가 오나 했더니 군사독재는 계속되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이때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변경한다. 국민통합과 더불어 영국 식민시대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이었다.
#샤프란혁명(Saffron Revolution, 2007)
2007년 8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또 일어난다. 표면적으론 군부가 예고 없이 휘발유, 경유, 천연가스 등 연료판매가에 보조금을 없애, 가격이 몇배씩 인상된 것에 분노하여 시작됐다.
학생들, 일반 시민들에 의해 일어난 이 시위에 승려들이 합세했는데 승려들이 입은 옷 색깔인 '샤프론 색'이 눈에 띄어 사프론 혁명이라고 불린다. 전국민 90%가 불교 신자인 미얀마에서 승려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고 한다. 승려들이 참여하자 본격적으로 대규모 시위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2007년, 승려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민주화항쟁이 일어난다.
샤프란혁명의 영향과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군사정권은 해체되었다.
2010년 11월 7일, 총선이 실시되었고 국호도 미얀마 연방공화국으로 개정하며 신헌법도 제정하였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2010년 총선실시까지 약 6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60년이라는 시간동안 군부독재를 당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그 이후의 민주화도 사실 제대로된 민주화라 할 수 없다.
미얀마 헌법상, 미얀마 군대와 경찰의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아닌 미얀마군이 임명한 군 사령관이기 때문이다. 개헌을 하면 안되냐? 웃긴 건 개헌을 하지 못하도록 개헌 저지선이 25%인데 상하원 각각의 전체의석 25%를 무조건 군부가 차지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75%만 선거로 뽑는다는 뜻)
www.youtube.com/watch?v=GGxEyIaoq60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 사람으로 75% 다 뽑히더라도 군부가 뽑은 25%가 반대하면 개헌 불가. 또한 국방부 장관, 안보부 장관같은 사람들도 군 사령관이 임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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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아웅산수치
작년 11월 총선에서, 아웅산수치는 상원 138석/224석, 하원 258석/440석을 얻어 압도적인 승리를 했다. 2015년 총선 결과보다 더 큰 승리였다.
그런데 군부는 또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를 포함해 수백명의 정부 인사들을 감금한다. 사실 이번 뿐이 아니었다. 군부는 자신들이 불리하면 계속 이래왔다. 특히 국민영웅 아웅산장군의 딸 수치는 30년간 구금 , 석방을 반복당하며 민주화운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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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전통을 달리하는 수많은 민족들이 뭉쳐진, 미얀마에서 갈등과 내전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이번 기회에 미얀마에서 군부정권체제를 무너뜨려버리고 '제대로'민주화를 이루어낸다면 태국같은 다른 여타 국가들에게도 큰 희망이 될 것 같다.
참.. 이런 국가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게 너무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