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2020년의 마지막 달.

Boribori:3 2020. 12. 5. 02:27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20년 한해를 돌아보며. 이 새벽에 잠이 안와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2019년 12월 19일. 엄마와 동생 인, 민과 처음으로 세명이서 함께한 모녀여행을 떠났었다.

그것도 비행기를 몇시간은 타고가야 하는 먼 나라 스페인으로.

 

2019.12.19~25. 스페인 , 모녀여행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스페인 골목길에 종종 보이는 귀여운 산타들. 

 

2019년 12월 24일. 

스위스로 넘어가기 하루 전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둘째동생의 생일을 축하하며 다음날 여행을 위해 기분좋게 잠자리에 누웠는데 

한국에 계신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탄생한 성탄절이었다. 우리 세 모녀는 모든 일정을 취소한채 한국으로 돌아와 할아버지 장례식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정신을 차리니, 2020년 새해가 찾아왔다.

가족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새해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봐야지. 새로운 마음으로 해가 바뀔 때쯤이면 늘 찾아오는 그런 마음으로 심심한 다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이 시작되었다.

뉴스엔 죄다 확진자가 하루 사이 몇명 늘었다, 어딜가나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 그런데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운데 어쩌란 말이냐,며  분노하는 시민들의 마스크 구하기 전쟁으로 약국에 길게 늘어선 줄들을 보도하는 암울한 기사들 뿐이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간의  비말감염을 막기 위한 이름도 어색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예방지침을 따르려다보니 추운 겨울은 더욱 혹독하게 느껴졌다. 

불편해도 조금만 참으면 따뜻한 봄이 올때쯤엔 괜찮아지려니,,하며 희망을 가졌던 코로나는 시간이 갈수록 전세계 방방곳곳으로 퍼져 팬데믹이 선포되어 - 자영업. 여행사. 항공사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크고작은 업체들은 경제적 위기에 내몰렸고 그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닫아뒀던 문을 다신 열지 못하게 된 곳들이 많아졌다. 

모두가 극도로 힘든 시기.

 

랜선 운동.

 

그래도 이겨내고 적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인한 다니던 체육관, 도장들의 휴관으로

무기력, 우울증이 밀려오며 방안에 누워만 있던 우리는 이를 이겨내고자 화상채팅을 통한 운동을 시작했다.

역시 함께하니 기쁨이 배가 됐다. 비록 오프라인 공간에서 함께하진 못하였으나..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계절과 자연이 주는 여유도 즐겼다.

 

2020년의 여름.

 

 

사람을 덜 만나는 만큼, 나 혼자만의 시간이,  가족들, 강아지들과의 시간이 늘어났다. 

약속이 많아 저녁을 함께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던 아버지도 저녁시간을 함께하셨다.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2020년 9월. 

사랑했던 존재와 또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나의 작은 천사, 화랑이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이별이었기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살아왔던 30년 인생 중 가장 아팠던 날들을 보냈다.  

아직도 화랑이 사진을 1초만 봐도, 눈물이 나오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아. 물론 좋은 일들도 꽤 있었다.

올해엔 특히- 작년, 그리고 재작년보다 파랗고 높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들이 많았다. 코로나가 미친 영향 중 유일하게 좋은 점일 테다.

올해 30살이 된 나의, 몇명 되지않는 친구들 중 4명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앞으로의 날들도 함께할 것임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약하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2주 후에 있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도 있으니, 올해엔 경사도 참 많다.)

그 중 한명은 벌써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가 되었다!

 

2020.01. 내 친구들 중 결혼 첫스따뜨를 끊은! 민 언니.
2020.11월. 처음해본  브라이덜샤워.

 

1월을 시작으로, 5월. 11월. 그리고 곧 있을 12월 19일.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달력의 큰 숫자들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청첩장의 날짜들로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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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의 셋째날인 어제는 또, 장례식에 다녀왔다. 

아빠의 가장 친한 형의 어머니의 별세 소식. 친형은 아니지만 나와 동생들이 '큰아빠'라고 불렀던 분일 정도로 어릴 적에 좋은 기억이 많은 분. 작년 12월에 있었던 할아버지 장례식날 3일 내내 자리를 지켜주고 계셨던 분이셨다.

식장은 수원에 위치해, 찾아가는데만 5시간이 넘게 걸렸다. 출발할땐 환한 대낮이었는데 해가 빨리 지는 겨울이라, 수원역에 도착하니 새까만 밤. 그런데 대도시의 건물들이 내는 밝은 불빛들로 도시는 환했다.

 

2020.12.3. 수원역.

 

코로나로 인해 장례식장도 여지없이 9시가 가까워지자 조문객들이 앉는 테이블들도 정리하고,  직원들은 퇴근하고. 더욱 적막했다.

묘했다. 불과 1년 전, 2019년의 12월엔 해외여행도 갔다오고, 장례식장에선 조문객들이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안부도 물으며 도란도란 어수선했었던 것 같았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큰아빠', '큰엄마'라 불렀던 분들과, 우리집보다 자주 갔었던 것 같은 그분들의 집에서 자란.. 그때는 꼬꼬마였지만 지금은 몰라보게 장성한 그분들의 자녀들과 함께 테이블 하나를 놓고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원이 고향인 그분은 26살에 포항으로 내려가 회사를 다니며 우리 아빠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연이 생겨 어떻게 또 함께 광양으로 터전을 옮겨 사업을 시작하시고, 30살에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 아빠 역시 충청북도 사람으로, 홀로 포항에 내려가 일을 하다 광양으로 가셔서 나를 낳으시고  지금까지 살고계시니,  혈연, 학연 하나 없이 두분은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신 것.

'큰아빠'는 우리 아빠에 대해 또 말씀하시며, 30년이 넘게 알고지낸 지금은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안다고 하셨다.

아무런 계산 없이, 나를 응원해주고 아껴주는 이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잘 살아온 인생인가 싶었다. 

그리고 또. 지금 내 나이엔 결혼 소식이 많지만 아빠 나이인 60대 정도 되면 겨울이 오는 게 무섭다고 한다. 특히 겨울에, 지인들의 별세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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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코로나가 인간세상을 괴롭힌지 벌써 약 1년째.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왔는데 지금까지 인간들은 이 지독한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고 호되게 당하고 있는 중이다. 

고통도 계속되면 둔해진다 하던가.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인한 불편함에도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예전엔 확진자 발생과 관련된 재난문자가 오면, 모두가 깜짝 놀라며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예민하고 경각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

이젠 지긋지긋하게도 오는, 문자함에 쌓여가는 문자가 되어가고 있다.

 

거리두기 방안 중 하나로 시작된 음식 배달, 포장 문화가 자리잡아가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데 이 쓰레기들은 쓰레기를 발생하고 소비한 인간들이 죽고 나서도 수백년동안 썩지 않고 남아있을 테니, 걱정이다. 

 그동안 지구를 지배해 온 인간에게 , 들리지 않는 고성을 지르고 있는 것 같다..

 

다가오는 2021년은 어떻게 달라질까.

여태까진 새해를 생각하면 이런 것 저런 것 해보고 가봐야지,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설렘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것 같은데

지금은 .. 지금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