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알자/중동지역

중동전쟁(팔레스타인전쟁/ 아랍-이스라엘전쟁)의 배경 및 원인 정리

Boribori:3 2017. 4. 29. 16:14

 인류역사상 물적, 정신적, 인명 등 여러 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전쟁의 주축이었던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전된 이후. 세계에는 다시 질서정립, 회복의 시간이 돌아오는 듯 했다.

그러나, 현재의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들이 있는 중동지역에는 - 2017년인 지금까지도.  평화가 오지 않고 있다.

 

길고 긴 역사적인- 즉. 민족적, 종교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중동지역의 여러 국가들은 

4차에 걸친 중동전쟁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엄청난 전쟁피해로 고통받았다.

(중동전쟁은1948년~1973년 4차례에 걸쳐 이스라엘과 아랍국가간에 벌어진 전쟁을 일컫는다. 이스라엘-아랍전쟁이라고도 하며 팔레스타인 전쟁이라고도 한다.  )

중동전쟁이 끝난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이번 시간엔, 이 중동전쟁이 어쩌다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 및 배경에 대해서 정리해본다.


원인 및 배경

역사는 기원전(Before Christ, B.C.)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세기(B.C. 586),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 수도인 바빌론에 강제로 포로로 끌려간다.

이는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당하기 전까지(B.C. 538) 50여년동안 계속된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힘든 노예생활을 하면서 원한과 분노를 쌓으며 유대인들끼리 더욱 뭉치게 되며

그 힘든 시기에도 신명기~열왕기를 편찬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바빌론의 노예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페르시아 전 지역을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제,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 등이 이끄는 군사들, 십자군, 오스만투르크 제국(현재의 터키) 등에 의해 끊임없이 점령당하고 강제이주를 당한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2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없이 정복당하고, 박해받으며 자국을 떠나 전세계로 뿔뿔히 흩어지는 수난을 당한다.

이를 두고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오랜세월동안 유대인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땅을 정복, 점령했던 세력들은 이슬람교, 기독교였고 

따라서 지금의 이스라엘 땅은 이 세 종교의 공통 성지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주변의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아직도 예루살렘 땅을 , 이스라엘 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고난은, 이전에 살던 자신들의 고향을 되찾아야겠다는 열망을 커지게 한다.

그들은 전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음에도 - 한마음이다.

우리들 조상의 땅, 이스라엘 땅을 되찾아야 한다. -> "시오니즘 운동".

(흩어진 유대인들이 고국(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내고 있던)으로 돌아가 유대국가를 세우자는 민족주의 운동.

시온: 예루살렘 지역의 고대 지명. 즉, 시오니즘은 옛땅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뜻.)

 조국을 잃은 슬픔과 원한이 가슴깊게 새겨진 유대인들의 이러한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은.

1세기. 즉, 기원후 70년, 유대-로마 전쟁이 로마인들의 대승으로 끝나고, 예루살렘은 로마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나라를 떠나 로마제국 전역으로 끌려갔을 때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때는 유대인들에게 힘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타국에서 온갖 차별, 박해를 당하며 가슴속에 분노를 삭히며 힘과 부를 쌓아갔다.

   힘이 좀 생기자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인 '시오니즘 운동'이 시작되었다. 전세계 퍼진 유대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이들은 각국에 떨어져 살았지만 고국 가나안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마음은 같았다.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 : 모순되는 선언을 한 영국.

한창 대전 중이던 1917년.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밸푸어가, 선언 하나를 했다. 이는 현재의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주요원인으로 되어, 이름까지 생겼다. 서신을 보낸 외무장관의 이름을 따, '밸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이라고. 

              (밸푸어선언 내용. 원본은 영국국립도서관(the British library)에 보관되어있다.)


이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왜 영국이 유대인들을?


명목은 많겠지만, 주요 목적은. 돈이 많은 전세계에 퍼져있는 갑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 자기들 연합국(주축: 영국 프랑스 러시아)을 지지하도록 만들어 전쟁에 더 유리해지려고이겠지. 

 

그러나 이는, 2년 전, 1915년 10월에  영국이 아랍인들에게 약속한 맥마흔 서신과 모순되는 내용의 선언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맥마흔 선언이라고 부른다.)

 

맥마흔 서신(McMahon–Hussein Correspondence)은 1915년 7월 ~ 1916년 1월에 걸쳐 당시 *메카 샤리프였던 후세인과 10차례에 걸쳐 주고받은 서신이다.

(*메카 샤리프-> 메카(mecca):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출생지, 샤리프(sharif): 이슬람 예언자의 후손들) 

여기엔 종전 후, 영국이 전후 아랍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내용이고

여기엔 당시 스만제국 내 영토였던 팔레스타인땅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운다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왜? 1차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독일편이었던 오스만제국(당시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렸음)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자신들의 편에 서게 만드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McMahon%E2%80%93Hussein_Correspondence)



이렇게 영국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일관성없는, 상호 모순되는 내용의 약속을 해 유대인과 아랍국가간의 분쟁을 키웠다.

어쨌든, 전후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위임통치하게 되었으며 더 최근에 한, '벨푸어선언'으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 함으로써- 그곳에 오랜시간 정착하고 있던 아랍인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기원후 636년부터, 약 1300여년의 긴 세월동안 팔레스타인 땅엔 아랍인들이 살고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인구통계학자인 Justin McCarthy가 쓴 the population of Palestine이라는 책에, 

1900년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의 94%가 아랍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직까지도 분쟁과 대립이 멈추지 않고있다.

  

제 2차 세계대전(1939~1945)

그러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의 패망으로 끝나면서, 1945년. 

나치독일의 유대인 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가 해방된다.

해방되기 전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선, 약 600만-1100만여명의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대인들이.

 인종청소라는 히틀러의 명목하에,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유럽 내에 살고있던 유대인들의 절반 이상이 ,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 오랜시간 이렇게 타세력들로부터 고통받았고 성전에 쓰여진 고국으로 돌아가 

더이상 박해, 차별당하지 않을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한다.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대인 난민들이 대거 발생한다. 특히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로 고통받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 거기 살고있던 정착민들(아랍인들)과 분쟁을 일으킨다.


골치가 아파진 영국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끝내겠다고 하고 이들의 운명을 유엔에게 떠맡긴다.

 그리고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지역과 팔레스타인지역으로 분할하자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채택한다.

 이를 유대인들은  환영했고, 아랍인들은 반대하였지만,

(당연하다. 분리안 채택 당시의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 인구 비율만 봐도 전체 인구 67% 이상이 비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33%로 불과했고, 소유지 면적은 7% 미만이었다고 한다..)

아랍인들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독립선언은 1948년 5월 14일,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오랜시간을 살아온 아랍인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겠다.

이렇게 아랍인들이 극구 전면반대했음에도, 영토 분할안이 빠르게 채택된 것은 

당시 유엔이 미국의 주도하에 있었고 미국은 미국 내에 살고 있는 돈많은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아랍국들은 미국을 더더욱 불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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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은 중동전쟁의 개막식이었다.    

 

글이 길어졌다.

다음 포스팅에는 1차~4차에 걸친 중동전쟁에 대해 따로 정리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