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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by Boribori:3 2018. 1. 9.

 

이전에 다녔던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벌써 그곳을 다닌지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강산도 변한다던 10년이 지났는데도,

대부분의 것들이 그자리 그대로였다.

자주 가던- 남녀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로 꼽혔던 빵집, 최고의 맛을 자랑했던 국밥집들,

마을 내 거의 유일했던 치킨가게, 분식집, 은행, 미용실, 슈퍼까지,

그대로였다.

 

슬로시티, 창평.

 

당시에도, 지금도 유일했던, 유일한 빵집.  인테리어도, 빵들도 그대로였다. 빵 하나에 행복이 있었던 때.

 

.

.

 

힘들고 아팠던 , 당시엔 고통스럽고 처절했던 기억들도 조금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리운 추억으로 변하는 것 같다.

처음으로 부모님 품을 떠나 생전 한번 가보지 못한 타지에서, 처음보는 친구들과 24시간을 함께해야 했었던 그때.

기숙사 호실을 난생 처음-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반짝거리게 청소를 해놨는데- 청소검사를 하는 선배가 난로가 놓인 바닥구석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손끝에 먼지가 조금 묻었다며 이가 덜덜 떨리는 추운날 잠옷입고 밖에서 기합을 받아야 했었던 그때.

식욕이 아주 충만했던 그 시절, 학교밖의 분식집, 슈퍼한번 가기 위해선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며 외출증에 서명을 받아내야 했었던 교도소 생활과 다를바 없는 것 같았던 그때,

푹푹찌는 한여름 무더위,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에어컨 없는 교실에서, 살이 쪄서 점점 꽉끼어가는 교복을 입은 채 되지도 않는 공부를 하는 시늉을 했어야 했었던 그때,

복도에 지나가는 남학생과 다른 말도 아니고 '안녕'이라고 인사를 한 순간 끌려가서 '이성교제'라는 타이틀로 혼이나야 했던 그때,

공부, 공부, 공부밖에 몰랐었던 - 그리고 친구들과의 경쟁을 부추겼던 선생님들,

 

 힘들고 억울하고 납득이 안 되는 상황에 더욱 힘들었던 절대 잊을 수 없는 고등학교 3년의 시간.

그땐 하루가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긴장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쌓이는 스트레스-

사실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벌써 10년이..?-) 강렬했던 추억에 불과하지만

17, 18, 19살이었던 당시에는 참, 불안했고 힘들었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 또 실제로 괜찮은지 알았었는데 , 실제로 몸은 받았던 긴장을 축적하다가, 표출하기 일쑤여서.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수면제에 의지해 잠을 청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아픔은 말랑하고 흐물했던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시간.

시간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교훈을 준다.

그때도 이겨냈으니, 돌이켜보면 한 조각의 추억일 뿐이니, 괜찮을거라는 .

다음번엔 이런 상황이 왔으면 어떻게 대처해야겠다는.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또는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미련을 통한 앞으로의 다짐을.

 

그런데 생각해보면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내가 강해서,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함께 견디며 위로해준 친구들이, 늘 나를 응원해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그 시기를 함께 겪은 사람들은, 가슴속 깊이 새겨지는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서- 오랫동안을 만나지 못해도,

그 시간동안 연락 한번을 하지 못했어도,

만나면 그렇게 편하고 즐거울 수가, 행복할 수가 없다.

그때를 굳이 말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했었기에 만나는 순간, 그 추억이 공유되는 사람들.

만나는 순간, 잊고지냈던 과거의 조각조각 파편들이 연결되어 구름이 되고 비가되어 젖게 만드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든 하나뿐인 특별한 추억들.

 

시간은 추억을 만들고 추억속엔 지금보다 젊고 어렸고 예뻤던 나와, 그들이 , 그 공간이 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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